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ul 여진 Apr 23. 2024

내 이름은 빌어 처먹을 년.

 은진이란 이름을 놔두고 빌어 처먹을 년이란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2학년, 악몽이 시작된 그곳으로 이사를 간 그때부터였다.

원인 모를 병 때문에 자다 깨서 토하기를 반복하느라 머리맡에 늘 작은 대야가 놓여 있었는데, 이사 간 그곳에서의 일상이 너무 지옥 같아서 별 일 아니라고 넘길만한 것들은 기억에서 지워버렸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사한 후부턴 자다가 토하는 일은 없었다. 다만 그때부터 불면증이 시작 됐다.


 마당에 있는  푸세식 화장실은 작은 조명이 있긴 했지만 밤에는 무용지물이라 오빠들 방에 하나, 할머니 아버지 은진이가 자는 방에 하나. 요강을 두고 소변을 봤다.

그 당시엔 보리차나 옥수수차를 우려 마셨는데, 다섯 식구 모두 물 중독자처럼 자기 직전까지도 마셔댄 탓에, 안 그래도 옥수수차를 우려 마실 경우 소변을 자주 보게 되는데, 잠들기 전까지 마셔댔으니 양 방에서 새벽 내내 돌아가며 소변보기 바쁘다.

바로 내 머리 위에 방음도 안 되는 문이 있고, 문 바로 앞에 요강이 있으니 오빠들이 번갈아가며 소변보는 소리를 듣고, 요새는 보기 드문 갓난아이 손 크기만 한 바퀴벌레 지나가는 소리, 새끼 고양이도 잡아먹을만한 사이즈의 쥐가 벽을 갉아먹다 찍찍대며 새벽을 무대 삼아 노는 소리를 듣다 보면, 아버지가 출근하기 위해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을 차려 먹는 모습을 실눈 뜨고 보고서야 잠이 든다. 그 시각이 새벽 5시 30분에서 6시 사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7시 30분에서 8시쯤이면 할머니가 고레고레 소리를 지르며 은진이를 깨운다. 매일 고작 2~3시간 자고 일어나느라 오빠들처럼 재빨리 잠에서 깨지 못해 어떨 때는 전화벨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꿈속에서 받느라 부엌에 계시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서 대야에 물을 받아 자고 있는 은진이에게 퍼부은 적도 있다.

이미 오빠들은 일어나서 세수도 하고 밥 먹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은진이는 일어나자마자 소변으로 가득 찬 두 요강을 비우는 것으로 아침을 맞이해야 했다. 거의 넘칠 정도로 가득 차는 날도 많은데 고작 18kg 나가는 은진이가 들기엔 무거웠지만, 바닥에 흘리지 않으려 초긴장 상태로 부엌의 높은 난간을 겨우 지나 숨을 참고 버리는데, 아무리 숨을 꽉 참아도 찌릉내로 인해 구역질이 나서 "웩~ 웩~" 소리가 절로 났다.


 아들만 귀하게 여기는 집안은 은진이 집 외에도 많았으니, 막내딸이 일어나는 동안 아무도 손대지 않은 이유는 설명할 필요 없겠지.

요강을 비우고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고 밥을 후딱 먹고 이미 먼저 가버린 작은 오빠보다 늦게 등교를 한다. 1시쯤 하교 후 집에 오면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돌린 후 방 청소를 시작한다.

작은 방 안방 포함해서 6평 남짓할 정도로 작은 집이었지만, 키 110cm에 몸무게 18kg 정도 나가는 은진이가 청소하기엔 놀이터 수준처럼 크게 느껴졌다. 쓸고 닦고 정리하고. 아이들 키우는 다른 집처럼 장난감이 있지도 않았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몰래몰래 그려야 할 정도로 할머니와 아버지가 그림 그리는 걸 금지했기에 딱히 어질러질 것도 없이 늘 방 상태는 비슷했다.

방 청소가 끝나면 좀 쉴 겸 점심을 차려 먹고, 만화를 보다 보면 세탁기 알림 소리가 들린다. 밥상을 치우고 목욕탕 의자를 세탁기 앞에 가져다 놓고 집게를 손에 쥔 채 까치발을 들고 깊은 세탁기 통 속에 들어 있는 빨래들을 건진다. 키는 작고 세탁기 통 속은  깊고. 손목에 힘이 없어 집게로 겨우 잡았다가 놓치기를 반복하느라 겨드랑이와 갈비뼈 쪽의 고통을 참으며 대야에 다 건져내고 나면, 마당에 빨랫줄 고정해 둔 장대를 내려서 빨래를 널기 시작한다.

여름이면 그나마 다행인데 겨울에는 찬물로 빨래된 걸 너느라 양손이 벌게지고 손이 아리도록 시린 통증을 견디며 널어야 했다. (그래서 겨울을 싫어하게 된 건가 이 글을 쓰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

빨래를 다 널고 나면 설거지를 해두고 할머니 장사하는 곳에 가서 할머니가 화장실도 가고 이것저것 볼 일 보시라고 대신 앉아 장사를 했다.


 계절마다 해야 할 일이 추가적으로 더 있었다. 여름 장마철엔 수돗물을 쓰는 집은 구정물만 나오기 때문에 학교 마치고 부리나케 달려와 여러 대야에 최대한 받을 수 있는 만큼 물을 받아놔야 했고, 겨울에는 연탄도 갈고 번개탄도 넣고 한 솥 가득 따뜻한 물을 준비해둬야 해서 난간을 오르내리며 물을 채워야 했다. 한 번은 학교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너무 졸려 잠깐만 눈 붙인다는 게 2시간이나 자버려서 바통터치 할 시간을 놓쳐 버렸다. 시계를 보자마자 허겁지겁 물에 밥을 말아 김치 하나 꺼내 놓고 먹고 있었데, 소변이 급해서 참다못해 들어온 할머니는 마당에 있는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시고 밥 먹고 있는 은진이를 보며 분노의 눈빛으로 성큼성큼 들어와 머리채를 잡고 앞으로 옆으로 흔들기 시작했다.

숟가락을 든 채, 서러움에 눈물이 나서 목이 메어 밥이 목으로 넘어가지도 않는데 은진이는 반항도 못하고 할머니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버텨야 했다.


 그렇게 은진이는 9살 때부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할머니가 시킨 일을 했지만, 할머니는 단 한 번도 은진이에게 잘했다는 칭찬을 해주지 않으셨고, 오히려 "빌어 처먹을 년이 지 애미 닮아서 게을러 빠져 가지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을 18번 곡 노래 부르듯 하루도 빠짐없이 화를 내며 말하셨다. 그리고 종종 수원에 살고 계신 작은 아버지(셋째 아들)와 통화를 할 때마다 "빌어 처먹을 년이 청소도 제대로 안 하고 하는 둥 마는 둥 집에 발 디딜 곳도 없이 해놓는다" 하소연을 했다. 설날과 추석 딱 두 번 뵙는 수원 작은 아버지는 그때마다 "왜 할머니 말을 안 듣냐, 왜 네 할머니 고생하는데 안 도와주냐, 다른 집안 애들은 알아서 집안 살림 다 하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냐" 잔소리를 퍼부어 댔다.

앞서 말한 것처럼 딱히 치울 것도 없고 6평밖에 안 되는 집에 다섯 식구 짐이 쌓여 있으니 아무리 치워도 치운 태도 나지 않았을 뿐인데, 노는 시간도 없이 노동부터 하게 된 은진이의 수고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추운 겨울 밖에 앉아 장사하고, 얼음물 깨서 설거지하고, 속옷은 기어코 손으로 빨아야 한대서 손 빨래 하느라 그 작은 손등이 갈라지고 피가 나는데도 알아주는 이가 없었으니, 은진이의 일기장에 "나는 왜 태어났나" "나를 식모로 쓰려고 낳았나" 적힌 이유를 알 것 같다.


 오빠들에겐 "아고 나 강아지 내 새끼" 애칭을 불러주며 그리도 이뻐했는데, 은진이는 할머니 입에서 '은진아'하고 불려 본 기억이 거의 없다. 한 번은 할머니가 사람들 앞에서 은진이를 불러야 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초량에 살던 작은 아버지네에 자녀가 넷이고, 은진이네는 셋인데, 은진이 오빠 둘의 이름을 먼저 부르고, 친척네 손자들 이름을 순서대로 부른 뒤 맨 마지막에 "아이 은진아" 겨우 떠올려 부른 적도 있다. 그때 할머니 주변에 있던 교회 사람들은 손주가 많아서 이름이 헷갈리냐며 깔깔거리고 웃었지만 "머머야  아이 머머야 아이고 머머야" 정정해 가는 동안 은진이는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을 느꼈다.

왜냐하면, 친척네 손자들도 기껏해야 1년에 2~3번 보는 게 전부인데, 365일 같이 사는 은진이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고, 친척네 손자들 이름은 그리도 쉽게 외웠다는 사실이 "나 고아인가?" 하는 마음이 들었을 정도였다고 하니까.


  다행히 성인이 된 지금의 은진이는 완강히 반대하는 아버지를 겨우 설득해서 개명을 했고, 신기하게도 개명 후 일하게 된 곳에서 명찰을 착용하고 근무를 하게 됐는데, 그때부터 쭉 이름 뒤에 호칭이 따라붙었다. '여진 실장님''여진 매니저님' 여진 주임님' '여진 쌤' '여진 원장님'. 개명 한 이름을 좋아하지 않으래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

어떤 사람들은 이름이 인생에 5% 밖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름을 많이 불리며 사느냐와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그 퍼센티지는 달라진다.

무엇보다 은진이의 본명이 가졌던 뜻은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부모들에게 평생 효도하라는 마음으로 '은(돈과 정성)으로 보답하며 살아라'해서 지었던 이름이라면. 개명한 이름 뜻은 '이름을 떨칠 만큼 성공하여 많은 사람들을 이끌다'는  뜻인데, 개명 후 그 뜻에 맞게 살아가고 있으니 결코 이름이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순 다.

개명 후 은진의 삶은 비로소 은진이를 돋보이게 하고, 은진이가 가진 매력을 뽐내며,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게 되었으니. 더 이상 '빌어 처먹을 년'이 아니라 누구보다 빛나고 아름다운 여진이 되었다.


자 그럼 이젠 "여진 작가님~"이라 불러주는 출판사 대표를 만나고, "여진아~"하고 다정하게 불러주는 연인만 기다리면 되는 건가?(생각만 해도 설레는구먼)




다음화 예고 : '나 고아인가?'라고 생각했던 은진이가 "진짜 고아가 될 뻔한 사건"이 일어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