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평 남짓 한 좁은 방 안 중앙에 할머니와 은진이가 앉아 있다. 멀뚱히 할머니를 본다. 한참을 바라보다 망설이던 말을 내뱉는다.
* 은진이 : 할머니, 엄마라고 부르면 안 돼?
잠깐의 정적.
* 할머니 : 왜?
* 은진이 : 나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엄마가 없으니까. 엄마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이 할머니 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엄마라고 부르고 싶은데, 할머니가 내 엄마 해주면 안 돼??
다시 또 잠시 정적.
* 할머니 : 안돼, 남들이 욕해.
* 은진이 : 그럼 우리 둘만 있을 때만 그래 부르면 안 돼?
6살? 7살?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여름이었고, 방 안에서 할머니가 바느질을 하고 있는 옆모습을 지켜보다 오래도록 망설인 말을 건넸던 것 같다.
그리고 딱 저 내용까지만 기억난다. 이후의 기억은 없다.
할머니가 뭐라고 답했는지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그날 이후 할머니는 왜인지 낯설어졌다. 은진이를 대하는 행동이.
그날 이후부터 바늘 시계 보는 법을 익히길 바라셨는지, 자주 시간을 물어보셨다.
2시 10분도 제대로 볼 줄 몰라서, "2시~~~~2..." 이런 식으로 뒤를 항상 흐리며 자신감 없이 말을 해도 크게 다그치진 않았지만 조금 답답한듯한 표정을 지으시며 수시로 물으셨다.
부엌이 워낙 좁아 마당에 있는 호수로 물을 받아 씻어야 했는데, 늘 감겨 주시던 머리도 감겨주지 않고, 옆에서 지켜봐 주지도 않고 홀로 감고 들어오게 하셨다.
조그마한 손으로 세수 대야에 물을 받아 엎드려 나름 열심히 감아 보지만 힘들다. 그런데 왜인지 은진이는 힘들다는 말도 하지 않았고, 갑자기 달라진 할머니 태도에 그 어떤 물음도 갖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알아갔던 것 같다. 할머니가 엄마를 대신해 줄 수 없음을. 그리고 뭐든 이제 혼자 해내야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 일이 고아가 될 뻔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지, 후인지 알 수 없지만. 정확한 건 이때부터 은진이는 그 어떤 부탁이나 요청도 하지 않았다.
"먹고 싶어요" "갖고 싶어요" "하고 싶어요" "가고 싶어요" 6~7살 아이라면, 아니. 그 누구라도 해볼 법한 요청도 하지 않았다. 무엇도 필요 없는 사람처럼. 할머니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이 역시 혼자 살아내야 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다음화 예고 : 무일푼으로 서울에 있는 엄마를 찾겠다고 나선 남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