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 한 선생님께서 나에 대한 오해를 하셨다. 정확히 어떤 일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내가 억울함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과 대화를 시도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생님께서 나에게 세게 말씀하셨다. 이대로는 대화로 풀지 못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나는 선생님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 나에 대해 오해를 하신 것을 풀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글을 쓸 때는 충분히 기분이 나쁠 만한 내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글의 장점을 방해할 수 있게 되며, 상대방의 기분이 더 안 좋아질 것이다. 최대한 부드럽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말을 확실히 써야 한다. 나름 글쓰기에 자신이 있던 나는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를 썼다.
얼마나 적었을까. A4 용지 한 페이지가 빽빽하게 채워졌다. 다행히 선생님은 편지를 받으셔서 읽으셨고, 나의 마음이 닿았는지 그동안 오해해서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셨다.
때로는 말보다 글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서로 감정이 앞서 나가려고 할 때는 말보다 글로 전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감정적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오히려 상황을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편지를 썼나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때 엄마 아빠한테 크게 혼나고 나서도 억울함을 글로 표현했던 것 같다. 나의 진심은 그게 아니라면서 말이다. 방 청소를 하다가 가끔 어릴 때 쓴 편지가 발견되기도 하는데, 조금 더 큰 나의 입장으로 어린 시절에 쓴 편지를 보면 꽤 수치스럽기도 하다. 그때는 나름 글을 써보겠다며 끄적였을 텐데,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중구난방을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가 편지를 이런 식으로 쓰냐며 과거의 나에게 핀잔을 주기도 한다. 그래도 나름 어렸을 때는 이성적으로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썼겠지? 그리고 꽤 부모님께 글로 전달하는 게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억울하거나 슬픈 감정이 휘몰아칠 때는 부모님 앞에서 말로 후두둑 털어놓기도 전에 눈물부터 났으니 말이다.
요즘 나는 말하는 것보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글을 꾸준히, 많이 쓰다 보니 글 쓰는 게 더 편해졌다. 무엇보다 인간관계에서 사람과의 갈등이 있을 때도 전화보다는 글을 선호하는 편이다. 전화나 직접 만나서 말을 하다 보면 내 감정에 휘둘릴 때가 있는데, 그러면 하고 싶은 말을 잘 못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로 하면 때로는 화난 감정이 묻어 나올 수 있는데, 글은 객관적으로 보이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런 쪽에서는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람마다 이에 대한 관점은 다르지만, 나는 오히려 갈등이 있을 때 글로 써서 전달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게 더 숨겨져 있는 진심을 전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