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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기 Nov 14. 2024

게임의 룰

판에 끼고 싶으면 우리 방식대로 해

난세의 영웅이 되기 위한 조건, 어려운 시기에 지도자로서 가져야 할 덕목을 하나만 꼽으라면 그건 카리스마일 것이다. 중세의 왕들과 황제들은 스스로의 권위를 높이고 민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보여주기식 행사와 요식행위에 열을 올렸는데, 최근 몇십 년 사이 그들이 사용했던 비언어적 소통 방식, 즉 몸짓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사료를 통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정치적 제스쳐는 다음 세 가지다; 

1. 몸 굽히기. 존경과 복종을 나타내는 몸짓으로, 그 무게는 상체를 숙이는 정도, 고개를 숙이는지의 여부, 한쪽 무릎을 땅에 대거나 완전히 꿇어앉는지에 따라 달라졌다. 

2. 입맞춤. 가장 널리 사용되었으며 다양한 상황에 적용할 수 있었다. 입과 입을 맞대는 경우엔 둘의 지위가 동등함을 나타내지만, 손이나 발에 입맞추는 경우 복종을 의미했다. 비잔틴의 예로, 황제는 대관식에서 교황의 발에 입을 맞춰야 했다. 

3. 선물하기 (Investitura). 왕 또는 황제가 다른 이를 관직에 임명하거나 봉토를 내릴 때, 그 사실을 공표하며 상징적인 물건들 (칼집, 흙 한 줌, 망토나 장갑 등)을 함께 하사했다.


프랑크 왕국과 카롤링거 제국의 군주들은 매년 총회를 열어 민중 대표 (Grandi)들을 소집해 여러 안건에 대해 함께 의논하고 스스로 내린 결정에 동의를 구했다. 이는 지도자와 따르는 이들 사이의 정치적 결속을, 즉 모두가 한마음 한뜻임을 보여주기 위한 자리였는데, 주요 안건은 다음 출정일 결정, 법 제정/수정, 각종 권고 사항 (주일에 미사를 드리라던지, 십일조를 제때 내라던지...) 공지, 민중 대표들에게 금일봉 하사, 타국 외교관 접견, 범죄자 처벌과 사면 등 다양했다. 카롤루스 대제의 사후 제국이 분열되고 나선 총회 소집의 목적이 달라지게 되는데, 보여주기식 행사의 장이라는 본질은 같았으나 등장인물들이 군주와 그의 숙적 (대부분 정치적 라이벌)으로 바뀌었다. 그 자리에서 왕의 적은 "항복 의식 (Deditio)"이라 불리는 일련의 행동들-오랜 기다림, 무릎 꿇기, 왕의 발에 입맞추기-을 통해 자신이 패배했으며 자비를 구한다는 걸 공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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