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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삶-21

21. 그리고 지속되는 물음

by 아스트랄

순진이와 나와의 그 치열했던 고등학생 시절, 그 후로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나는 아직도 순진이가 교실 창 밖으로 떨어졌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가끔 악몽을 꾸고 일어나곤 한다.


4월, 한창 파릇한 잎사귀들이 창문을 가리기 시작할 때였다.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던 응급구조사의 팔 사이로, 옆으로 누워있던 순진이의 새하얀 얼굴과 그 위로 흩뿌려진, 갈색이 섞인 금색의 투톤 머리카락. 그리고 서서히 흘러내리던 찐득한 피의 줄기들.


그리고 원을 그리며 주변에 기어다니던 개미들과 벌레들과 응급차의 빨간 십자가 문양과 사람들이 급박하게 소리치는 모습이 아직도 사이렌 처럼 머리 속에서 울리는 것 같다.


"일어났니?"


긴 은발을 목 아래쪽으로 묶고, 머리카락 다발을 앞쪽으로 늘어뜨린, 흡사 '겨울왕국'의 엘사를 떠올리게 하는, 너, '순진' 이가 나를 보고 미소 짓는다.


"응. 지금 여섯 시 반 밖에 안 됐는데ᆢ"


나는 항상 그녀의 놀라운 자기 관리 능력에 감탄한다. 순진이는 일곱 살 때 이후로 주말을 포함해서 오전 일곱 시 이후로 늦잠을 잔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전날 새벽 세시건, 네시건, 심지어 밤을 새웠어도 말이다.


순진이는 지금. 나와 같은 기숙사 룸메이트다.



그때의 트라우마와 신체적 후유증이 아직 남아 있긴 하지만, 순진이는 일주일 만에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했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기 시작했다는 것뿐. 오히려 지켜본 다른 아이들이 며칠간 학교를 못 나올 정도로 힘들어했던 것에 비해서 말이다.


순진이는 건강을 회복하는 동안 부모님이나 친구들, 친척들의 얼굴을 알아보고 대부분의 일들을 기억했지만, 특이하게도 자신이 왜 갑자기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는지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사실, 몇 번이나. 그 '수학 시험지'와 관련된 일들을 그 애의 기억에서 끄집어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드러내 놓고 물어볼 수도 없는 것이기에.


순진이는 정말 죽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나에게 수학 시험지를 줬던 그 기억을 지우고 싶었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수학 시험 문제를 입수한 경로를 완전히 비밀로 묻으려고, '선택적 기억상실증'을 가장하고 있는 걸까?


그런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는 고3이라는 이유로, 그냥저냥 바쁜 일상이 흘러갔다. 영어학원과 수학 과외와(학원은 다른 아이들에게 실력이 들통날까 봐 못했다.) 논술학원에 관리형 독서실에ᆢ최고로 더웠다는 그해 여름에도. 나는 에어컨 때문에 감기 걸리지 않으려고 겉옷을 항상 챙겨 입고 다녀야만 했다.


그리고 순진이는 퇴원하자마자 한 달도 안 되어 덴마크로 이민을 가 버렸다.


나는 순진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위해. 수학 시험 문제에 대한 나의 부정행위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공부를 했다. 마치 내 수학 실력이 원래부터 좋았던 것처럼, 순진이가 준 시험문제 따위, 원래 내 실력으로 풀고도 남았을 것처럼.


그리고 나는 S대 법대에 합격했다.


그리고 순진이에 대한 소식은, 그 후로 몇 년 동안,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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