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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삶-22

22. 나의 순진, 청춘의 덫

by 아스트랄

"안녕? 오늘은 날씨가 어쩐지 우중충해. 변호사 사무실 개원 첫날치곤 그다지 좋은 건 아닌 것 같아."


나는 종로 한복판 '수다박스'라고 써진 촌스런 커피숍 간판 위, 3층에 조그만 사무실을 냈다. 책상과 의자. 캐비닛, 컴퓨터와 인터넷선과 전화기가 전부인 18평 공간이다. 아, 겨울옷을 걸어둘 옷걸이도 하나 장만했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가루커피를 넣어 마신다. 역시 커피는 블랙이지. 서리가 낀 창밖의 고풍스러운 노란 나뭇잎들을 내다보는 중이었다.


어느새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은빛 머리카락의 순진이가 내게 인사했다.


"아. 언제 왔어?"

"방금. 너 도와주려고."

"뭔 소리야ᆢ 네가 어떻게 날 도와ᆢ?"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순진이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여전히 고2 때의 얼굴과 말투다. 변하는 건 오직 머리카락뿐. 옷도 항상 교복을 입는다. 그 옛날 일제풍의 세일러복. 겨울이 다 된 11월 말인데도 흰색 반팔 하복이다.


"ᆢ춥진 않니?"


그저 미소를 지어 보이는 순진이.


"똑똑"

노크. 곧이어 띠 리 리 링 소리가 들리며 누군가가 들어온다,ᆢ 했는데, 커다란 분홍색 장미와 흰색과 연녹색이 섞인 금어초 다발이 문틈 사이로 먼저 얼굴을 내민다.


"개업 축하해!! 정의로운 최정의!♡^~^♡"


최근 소개팅으로 만나 사귀게 된 남자친구. 한서진.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그의 한걸음 걸음마다 순진이의 실루엣이 옅어져 간다.


안 돼! 사라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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