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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꾸 Jul 18. 2024

 파리, P여사

12 Paris

처음 혼자 떠났던 여행은 2012년 유럽이었다.

취업 후 처음 떠나는 여행으로 예전부터 로망이었던 유럽을 선택했다. 그땐 참 어떤 허세인지 유럽까지 가서 한국인과 동행한다거나 한인민박에 묵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한국인 많은 곳은 피해 다녔다. 비행기 옆자리에 앉았던 스위스 사람과 이야기한 적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다.

그렇게 한창 외로움을 느낄 때 즈음(다시는 혼자 유럽에 오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엄마가 파리로 왔다.

그렇게 여행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P여사, P여사였다.


P여사는 해외여행이 처음이었다. 영어도 못했다. 어느덧 장성하게 큰 딸내미가 유럽을 간다니 나도 딸 덕에 세상 구경 좀 해보자 해서, 나름 용감하게 나선 것. 내가 먼저 유럽에 들어와 있던 터라 혼자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로 건너온 P여사의 용기가 지금 생각해 보면 가상하다.

평생을 아들 딸 뒷바라지하고 해외여행 한 번 못 가볼 정도로 열심히 살아온 P여사에게 어느덧 다 커버린 딸과 함께하는 여행이 어떤 느낌이었을지 완전히 다 짐작할 순 없지만, 단언컨대 참 행복했을 것이라.

처음인 해외여행에 영어도 못해서 P여사는 나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갓난아기 때부터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이건 먹으면 안 돼', '자, 걸어보자', 이렇게 키워 왔을 딸이 앞장서서 '여기로 가야 돼 ‘, 이건 이렇게 하면 돼’라고 이끌어가고 있는 걸 보니 참 감개무량하다고 P여사는 표현했었다.

파리에서 유창한 영어로 교통카드를 만들어낸 나를 마치 장원급제한 마냥 우러러보기까지 했었지.


처음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P여사에게 많은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참 힘들게 모시고 다녔다.

하루종일 파리의 그 돌길을 걸어 다니게 했으니...

그러다가 P여사가 피곤한 기색을 내비치면 짜증까지 냈었다.

갑자기 반성문이 돼 가는 군.

참 하루종일 많이도 걸었고, 또 해 질 녘부터 둘이서 와인을 많이 마시기도 마셨다.

P여사는 새로운 세상에 깔깔거리며 즐거워했고, 처음 먹어보는 음식에 세상 처음 보는 P여사의 표정을 만날 수 있기도 했다.


2006년부터 본가에서 나와 살았기 때문에 참으로 오랜만에 오롯이 일주일을 함께 붙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함께 걷고, 구경하고, 와인을 마시며, 농밀한 시간을 보냈던 2012년 여름.

와인을 함께 마시며, 왜 파리에는 편의점이 없는가, 왜 파리의 사람들은 다 일하지 않고 여유롭게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있느냐, 여기는 관광객이 왜 이렇게 많은가, 이런 주제로 참 토론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또 내 연애 상담을 하기도 하고, P여사의 앞으로의 행보 등 다양한 주제로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한 날은 몽마르트르 언덕에 해지는 것을 보러 간 적이 있다. 몽마르트르에 대한 로망이 있던 우리는 온갖 국적의 사람들이 가득 차 있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 맥주를 팔러 다니는 사람들에 열광하며 아래 내려다 보이는 파리 시내 전경을 즐겼다. 그러다 성당을 배경으로 서로 사진도 찍었는데, 저녁을 먹고 야경을 보러 다시 올라오자 하고 내려간 식당에서 P여사의 휴대폰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가방을 다 뒤져도 보이지 않아 마지막으로 휴대폰을 쓴 게 언젠지 돌이켜보니, 언덕 위에서 사진 찍을 때.

이미 주문을 한 터라 두 사람 모두 자리를 비울 순 없었고 결국 나 혼자 다시 언덕을 올라가 갔던 길을 되돌아가며 휴대폰을 찾아야 했다. 언덕 위를 다 헤매고 성당 안에까지 다시 들어가 보았지만, 휴대폰은 보이지 않았고.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가져갔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비가 후드득 떨어지고, 다리는 아프고.


결국 휴대폰은 찾지 못했다.


와인으로 슬픔을 달랬던 그 밤.

그 밤 이후로 P여사는 더욱더 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언어도 안 통하는데, 휴대폰도 없으니. 게다가 이날은 여행을 시작한 지 둘째 날이었다.

혹여나 서로 놓쳐 길을 일을까 나를 열심히 따라오는 P여사의 모습에서 나도 참 많은 감정이 들었다.

참 소녀 같은 사람, 엄마도 많이 늙었구나.


파리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하루 차이가 나서 공항에서 P여사를 배웅했다. 그리고 다시 파리로 돌아와, 같은 도시인데 다른 기분인 나 자신을 만났다.

빈 침대가 너무도 넓게 느껴지고, 추억이 가득한 파리의 여러 공간이 참 적적했다.


에펠탑이 보이는 공원에 앉아 한참을 멍하게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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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말로 해 버리면 평범하지만 그때 나는 그것을 말로 서가 아니라 하나의 공기덩어리로 몸속에서 느꼈다. 문진 안에도, 당구대 위에 놓인 빨갛고 하얀 공 네 개 안에도 죽음은 존재했다. 우리는 그것을 아주 작은 먼지 입자처럼 폐 속으로 빨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이다.

삶의 한가운데에서 모든 것이 죽음을 중심으로 회전했다.'


2014년 겨울,

죽음이 삶의 대극이 아니라 우리를 늘 맴도는, 그 일부라는 사실을 나는 그 해 겨울에 깨달았다. 그리고 2012년 여름의 파리에서의 P여사와의 기억 또한 나를 맴도는 하나의 일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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