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Philiphines
중고등학생 때 진로를 결정 할 때,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참 대단한 것 같다.
난 아니었다.
그냥 고등학생을 벗어나 대학생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 했을 뿐 내가 어떤 것에 재능이 있는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럴 땐 대부분 부모님의 의견이 자녀의 미래를 결정한다. 그게 나에겐 '교대'였다.
재수까지 해서 힘들게 들어간 교대는 내가 생각했던 대학교의 모습과 달랐다. 대학교라는 곳은 서로의 지적인 이상향에 대한 토론을 나누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이상주의자'였던 나에게 교대는, 너무나 작고, 좁고, 답답한 곳이었다.
1학년 땐 그냥 별 생각없이 술이나 퍼먹고 지내다 2학년이 되고 나서,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 결론은 '교대는 아니다, 퇴학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였는데 부모님은 아니었고, 부모님의 지원 없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처음 했던 건 교대학생에게 '흔한' 과외 아르바이트였는데, 슬프게도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나는 내 진로에 대해 더욱 더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다. 노동강도에 비한 대가는 너무나 후한 아르바이트였지만, 재미가 없었다. 나는 확실히 돈보다는 '호기심', '흥미'가 더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 아르바이트는 '피자헛 아르바이트'였다. 홀에서 손님과 마주하는 업무를 지원했는데, 두달 내내 한 일은 설거지였다. 사람 하나 서 있을만한 작은 공간에서 업무 시간 내내 설거지를 했는데, 그때 내 즐거움은 점심 때 먹을 수 있는, 한 그릇에 원하는 만큼 담아 먹을 수 있었던 '샐러드'였다.
세 번째 아르바이트는 일본계 회사 공장에서 일했는데, 내가 하는 일은 하루 종일 서서 자동차 계기판을 조립하는 일이었다. 이 전 사람이 몇 가지 조립한 계기판을 전달해주면 나도 부품을 끼워서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그렇게 떠난 곳이 필리핀이었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떠난 곳이었고, 자유여행보다는 긴 시간동안 뭔가 배워오면 좋을 것 같아서, 영어 어학연수를 결심했었다.
필리핀에 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보통 어학연수로 가격이 싼 필리핀을 먼저 와서 영어를 배우고, 캐나다가 호주로 가서 더 깊게 배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필리핀 학원에서 만난 언니 오빠들은 대부분 필리핀 이후의 일정이 따로 있는 상태였다.
내가 만났던, 룸메 K양도 필리핀에 있다가 호주로 가는 일정이 있는, 언니였다.
처음 만났을 때 독특했던 건, 같이 도착한 멤버들을 동기라고 칭하며 굉장히 친하게 지내는데, 내 동기였던 Y양과 K양이 동갑이었고, K양의 동기였던 M양이 나와 동갑이었다. 그렇게 넷이서 굉장히 친해지게 되었는데, M양은 K양과 잘지내는 나를 질투하기도 했었다.
처음으로 가져봤던 나의 룸메 K양은 굉장히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또 모험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또 나와 잘 맞았다. 지금이야 어디든 겁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사람이지만 경험도 없고 어렸던 그 때의 나는 학원 밖에는 절대 혼자 나가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언니와 굉장히 여러 많은 곳을 탐험하러 돌아다녔다.
한 번은 세부 막탄에 있는 호텔들을 투어한 적이 있다. 잔 것도 아니고 그냥 로비랑 수영장만 구경하며 돌아다녔던 것인데, 시간이 흘러 그런 호텔에 자연스럽게 갈 수 있게 된 지금에서 떠올려 보면 정말 어리고 또 얼마나 풋풋한 경험이었는지 귀엽기도 하다.
그 땐 그랬다. 함께 학원 밖을 나가서 파인애플밥을 먹으면 행복했고, 처음으로 필리핀 현지인 교통수단을 타보면 행복했고, 길거리에서 망고를 사다가 학원 로비에서 깎아먹으면 깔깔 웃어댈만큼 행복했다. 학원 근처에 마사지샵과 한국 스타일의 가라오케가 있었는데, 마사지를 받고 가라오케에서 노래를 부르면 세상 천국이었다.
K양은 나보다 두 살 많은 대학생이었다. 컴퓨터학과를 졸업하고 필리핀-호주 어학연수를 온 사람이었다. 영어를 굉장히 잘했고,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인기도 참 많았는데, 한 참 어린 남자아이가 K양에게 꽂혀서 세레나데를 담은 영상편지를 남기고 갔던 기억도 있다. 지금도 K양과 만나면 함께 웃으며 떠올리는 옛날의 추억 이야기. 언제나 씩씩하게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 내는 모습들을 보며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했던 것 같다.
필리핀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Speaking Contest'를 빼놓을 수가 없다. 학원 여러 개가 함께 여는 영어 말하기 대회였는데, 대본을 직접 작성하고 그것을 외워 경연대회를 펼친 후 순위를 메기는 대회였다. 내가 있던 학원에 K양과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출사표를 던졌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교대'였음에도, '가르치는 일에 대한 떨림'을 주제로 대본을 만들었다. 처음 필리핀에 도착했을 때 K양의 영어실력이 훨씬 나보다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K양의 대본이 떨어지고 내 대본이 1위를 하게 되었다. 나였다면 질투했을 것 같은데 K양은 그러지 않았다. 응원해주었고, 나를 지지해주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나를 이해해주고 믿어줄 것 같은, 그런 룸메였다.
두 달이 지난 후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교대 학생 3학년으로 돌아왔고, K양은 호주로 갔다. 호주에서 더욱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온 K양은 지금 영어학원 강사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같이 그 해를 떠올리며 함께 깔깔대며 웃을 수 있는 내 친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