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Toronto
부모님이 휴학도, 퇴학도 안된다는 학교를 어떻게 또 4년 내내 졸업했다. 임용만 되면 너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고 해서 임용도 어찌어찌 통과했다. 그리고 얻게 된 6개월의 휴가. 그렇게 간 곳이 캐나다, 토론토였다.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건 토론토 어느 어학연수 학원에서 레벨테스트를 받을 때였다. 4월 초임에도 겨울같이 느껴지는 날씨였는데, 후드득 떨어지는 진눈깨비를 해쳐 실내로 들어가며 겉옷을 움켜쥐고 그렇게 만났다. 레벨테스트는 비슷한 시각에 도착했던 나와 R군, 그리고 K군이 함께 받았다. 레벨테스트를 받고 서로 모두 생소한 도시에 도착한 지 오래되지 않았던 때라 함께 토론토 구경을 약속했었다. 필리핀도 그렇고 여기 캐나다도 그렇게 비슷한 시기에 입성한 사람들끼리 친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R군은 스위스에서 온 친구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하얀 얼굴에 색깔 있는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유럽사람이 영어를 배우러 온다는 사실이 생소했다. 그래도 부러웠던 건, R군이 쓰는 언어가 영어와 어순이나 느낌이 비슷해서 나보다 영어가 급속히 는다는 사실이었다. 토론토에 처음 도착했을 때 K군이 날씨, 시차 적응으로 힘들어해서 거의 둘이서 토론토 구경을 같이 했었다. 토론토 아이랜드 부두 근처에서 핫도그를 사 먹고 호수를 구경했던 적이 있다. 나보다 두 살 어린데, 문을 열어준다던가 하는 여러 배려 깊은 행동들에 감동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양과 동양의 차이를 참 많이 느끼게 되었다. 같은 인간인데도 서로 다른 피부색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게 신기하달까. 토론토는 화요일에 영화 값이 반값이었다. 반값이어도 비싼 영화표였지만, 듣기 연습한다고 종종 영화관에 같이 가기도 했었다. K군과 함께 셋이 코리아타운 가서 순두부찌개를 먹기도 했었는데, R군은 한식을 정말 잘 먹었고, 계속 셋이 다니다 보니 R군이 한국 문화, 정서에 점점 익숙해져 가는 느낌이었다. 그 맘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처음 해외에서 '산다는 느낌'이었고, 새로운 사람들, 특히 날 좋아해 주는 사람 두 명과 여기저기 새로운 곳을 탐방하고, 즐거운 추억을 쌓던 그 시간들. 토론토는 다민족 국가여서 코리아타운, 차이나타운, 인디아타운... 등등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들도 많았다. 그래서 그런 지역에 찾아가 그 나라 음식을 먹어보기도 좋았다. 셋이 여기저기 다니며 이나라 음식, 저나라 음식을 먹어보기도 했는데, 마치 토론토에서 세계여행 하는 기분이었다. 난생처음 외국에서 영화를 보고, 난생처음 라이브카페에서 맥주를 먹고, 난생처음 야구장에 가보고, 마구마구 추억을 쌓을 때 즈음, M양이 토론토로 들어왔다.
M양은 K군과 필리핀 어학연수에서 만난 사이였다. 보통 어학연수를 하면 '필리핀-호주', '필리핀-캐나다' 이런 식으로 비용이 저렴한 필리핀에서 언어능력을 연마한 후 영어권 국가로 가서 공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M양과 K군도 그런 케이스였고, 이미 필리핀에서 가족같이 지내던 사이라 굉장히 친했다. 사실 이미 들어올 때부터 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보였고, 처음에도 둘이 사귀는 거 아니냐고 굉장히 놀렸던 것 같다. M양이 들어오면서 셋이었던 우리는 넷이 되어 함께 돌아다녔다. K군과 M양이 연인이 되고 넷 사이가 어색해질 때 즈음, 우리 셋도 어색해졌다. 처음 토론토에 갔을 때는 마치 알에서 깨고 나와 처음 본 새를 어미새라 믿고 따라다는 것 마냥, 처음 친해진 K군, R군과 여기저기 토론토를 구경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많은 사람들과 친해지게 되었고, 셋이서 지내는 시간보다 각자 새로운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토론토에는 참 다양한 국가에서 온 친구들이 많았다. 베네수엘라에서 온 D양, 카자흐스탄에서 온 Y양, 터키에서 온 K양, 러시아에서 온 M양... 처음 나는 토론토에서 홈스테이를 했었다. 그리스 할머니의 집이었는데, 끼니도 챙겨주시고 안전한 울타리 안에 있는 느낌이라 좋았다. 그러다가 친구들과 밖에서 밥을 먹는 일이 많아지고 토론토라는 공간이 익숙해지면서 독립해서 나와 집을 렌트해서 살기도 했었다. Y양, K양, 그리고 한국에서 온 J양은 셋이 집 하나를 렌트해서 같이 살았는데, 그래서 그 집에서 홈파티도 종종 열었다. 한국에서 친구가 보내줬던 한국과자, 호떡밀키트 같은걸 집들이 선물로 들고 가 밤새 신나게 놀았던 기억도 있다. D양과는 공원에서 열리는 재즈 페스티벌에 가기도 했다. 임용준비를 하던, 힘든 시간들을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강박 같은 자세로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또 한 때는 사람 만나기보다 혼자 토론토 이곳저곳을 탐방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땐 학원도 많이 쨌다. 대학교 때 전날 연극 동아리 공연으로 밤을 새도 그다음 날 수업을 못 쨌던 나였는데, 그냥 가기 싫으면 학원 대신 공원 가서 노래 듣고, 빈둥거리고 그러기도 했다. 또 나중에는 토론토에서 열리는 행사란 행사를 다 찾아다니기도 했었다. Fringe 연극 페스티벌 스탭을 맡기도 했었고, Pride 페스티벌 퍼레이드 행사 스탭을 맡기도 했었다. 분명한 건 2011년 여름, 나는 그 파아란 토론토 하늘 안에서 보고 느끼고, 여러 경험들로 많이 성장했다는 것.
R군이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둘이 만났던 건 R군이 살던 집 근처 카페였다. 현지인들만 가는 아주 작은 카페였는데 바깥은 바라보고 앉아서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해 둔 바 형식이라 비 오는 날 가면 천국이 따로 없던 곳. R군과 한창 같이 다니다 어색해진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아마 계속 커지는 R군에 대한 내 감정과 그것에 부담을 느낀 R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글쎄, 만약 우리가 토론토에서 사귀었다면 어땠을까. R군에게 나에 대한 감정을 물어본 적도 없고, 내가 R군에게 내 감정을 정확히 밝힌 적도 없다. 그냥 나는 R군과의 약속이 생기면 설렜고, 같은 공간에 있으면 행복했다. 둘이 있으면 심장 안에서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간지러웠는데, 또 그걸 티 내지는 못하고 더 씩씩한 척 굴었던 것 같다. 그때 'The Smiths'의 'There is a light never goes down'를 참 많이 들었는데,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토론토 생각이 난다. R군이 스위스로 떠나는 날 버스 정류장으로 친했던 사람들과 배웅을 하러 갔었다. 거기서 나는 혼자 엉엉, 정말 어린아이인양 목 놓아 울었다. 뭐가 그렇게 슬펐을까, 더 이상 R군을 보지 못한다는 것? 더 솔직하지 못했던 내 모습? 설렜던 그 순간들에 대한 이별?
2012년 여름, 나는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고, R군을 스위스에서 만났다. 로잔에서 머물던 중 몽트뢰라는 곳으로 R군이 왔었고, 호수를 한 바퀴 돌며 이야기를 나눴다. 일 년만인데 익숙해서 신기했고 지구 반대편 캐나다에서 만난 친구를 스위스에서 재회했다는 것이 또 설렜다. 2014년 가을엔 R군이 한국에 왔었다. K군과 함께 만나 막걸리를 먹으며 K군의 생일파티를 했다. 그 이후에 한국을 두어 번 더 왔다고 들었다. 2017년 즈음 K군에게 연락을 했을 때엔 K군이 미국 시카고에 있다고 했었다. 그리고 2018년에 나는 인도네시아에 갔다.
Take me out tonight where there's music and there's people and they're young and alive.
Driving in your car, I never want to go home.
Because I haven't got one anymore.
Take me out tonight because I want to see people and I want to see lights.
If a double decker bus crashes into us, to die by your side is such a heavenly way to die.
Take me out tonight, take me anywhere, I don't care, I don't care, I don't care.
-The Smiths,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