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Mongolia
‘몽골’ 그 두 글자만으로도 웅장해지는 설레는 곳. 특히 여름 몽골은 딱 좋은 날씨와 쏟아지는 별이 사람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기에 적합한 공간이다.
사실 인도를 갈까 말까 고민할 때, 몽골도 리스트에 있었다. 그때 가려다 안 간 건 몽골이 혼자 다니기 힘든 나라이기 때문이었다. 울란바토르를 제외하고는 대중교통도 잘 되어 있지 않고, 숙소도 2~4명 같이 자는 게르이기 때문에 같이 다닐 동행자를 구해야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인도에서도 동행을 구해 같이 다녔고, 자연스레 그다음 여행지로 몽골로 정하게 되었다. 인도와 다르게 몽골은 동행자를 미리 한국에서 구해서 떠났다. 고비투어와 홉스굴까지 동행만 10명이라, 그래서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이라면 몽골은 정말 할 이야기가 많은데, 오늘 할 이야기는 정말 길에서 만난, 그리고 그 인연으로 다른 나라에서 다시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일주일의 고비투어를 마치고 울란바토르에 2박을 한 후 홉스굴로 떠나는 날이었다. 울란바토르에서 홉스굴로 가려면 일단 므릉이라는 도시로 가야 했다. 그리고 보통 므릉에 도착하면 홉스굴 안에 있는 호텔에서 픽업을 하러 왔다. 물론 택시를 타고 들어갈 수도 있다. 무릉까지는 비행기로 왕복 20만 원 정도였고 버스로 가면 2만 5천 원 정도였다. 나는 물론 돈도 돈이지만, 인도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 보았던, 거지 깽깽이 고생을 하면서 보았던, 풍경들이 도착지에서의 감동보다 더 좋았어서 버스를 선택했다.
몽골은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나라라 고비투어를 가이드해 줬던 친구가 공책에 써준 몽골어를 들이밀고 어찌어찌 버스표를 끊었다. 터미널에서의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던 시간이 생각난다. 낯선 땅에서 혼자 대중교통을 타고 또 낯선 곳으로 떠나는 시간.
버스를 찾는 데도 고생을 많이 했다. 우리나라처럼 전광판과 플랫폼이 있는 게 아니라 터미널 밖에 두서없이 서 있는 버스 사이에서 므릉으로 가는 버스를 물어물어 찾아야 했다. 영어도 안 통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므릉?’을 외치며 표를 보여주며 돌아다닐 수밖에. 버스 시간이 다가오는데 버스가 보이지 않아 진짜 심장이 타들어갔다. 버스를 타서 몇 번을 므릉가는게 맞느냐 물었다. 안을 살펴보니 외국인 몇 명이 있길래 므릉가는 거 맞는구나 싶었던.
울란바토르에서 멀어지면 건물들이 아예 사라진다. 대신 소, 염소, 말 등 동물들의 떼가 보이고 또 간혹 게르도 보인다. 어느 나라를 가든 이제는 대부분 서양화가 되어서 높은 건물들과 서양식 집들이 보이는데, 몽골은 여전히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긴 여정이었지만 몽골의 낮과 해 저물어가는 모습, 그리고 밤을 오롯이 지켜볼 수 있어서 버스를 타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2시간 만에 도착. 인도에서 저지른 실수를 다시 한번 반복하고 말았다. 해가 뜨지 않은 새벽에 혼자 아무도 모르는 곳에 도착한 것이다. 몽골사람들은 분주히 자신의 목적지로 움직이고, 내가 모르는 곳, 내가 모르는 사람들, 심장박동수가 빠르게 올라간다. 그때 나를 살린 사람이 바로 Y양과 J 군이었다.
버스를 타면서 이 버스가 므릉으로 가는 게 맞는지 확인할 때 보았던 버스의 유일한 외국인 커플이었다. 깜깜한 밤에 아무런 가게도 없는 주유소 같은 곳에 내렸던 터라 그 커플을 붙잡고 나와 해가 뜰 때까지 같이 좀 있어달라고 했었다. 두 사람은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주었고, 같이 ‘6시 차를 탔어야 했어’를 백만 번 반복하며 밤거리를 헤맸다. (14시간 걸린다고 해서 더 이른 버스를 탔었다.) 그리고 불빛이 있는 ATM기 안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해가 뜨길 기다렸다. 최근에 만나 그때의 사진을 받았는데 어찌나 추억이 돋던지. ATM기에서의 노숙 끝에 해가 떴고, 일찍 연 레스토랑을 찾아 요기한 후 투어인포메이션에서 정보를 받아 버스터미널을 찾아갔다.
두 사람은 1년 반 동안 아시아와 남미 쪽을 여행하고 있다는 네덜란드 커플이었다. 몽골에서 만날 땐 사실 부부인 줄 알았고, 그때는 나이도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보다 나이가 꽤 많았고, 결혼은 하지 않고 함께 사는 커플이었다. 그리고 함께 시간을 쌓아가며 틈이 생기면 꼭 어디든 다른 나라로 여행을 다니는 커플이었다.
인생이라는 게 그렇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만날지 모른다. 단지 그때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할 뿐. 나답게.
또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날지 모른다. 이 커플의 몽골 다음 여행지가 한국이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고, 약속처럼 그 해 가을, 우리는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북촌 한옥마을과 인사동, 그리고 청계천까지 함께 걷고 명동에서 함께 찜닭을 먹었다. 한국의 풍경과 맛을 뭘로 보여주면 좋을까 몇 번을 고민하고 선택한 코스와 메뉴였는데, 다행히 두 사람 모두 좋아해 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한국의 부산과 경주 등 여행 후 다른 나라로 또 여행을 떠났다. 몇 주 전 세부에 다녀오고 Y양과 대화하던 중 세부가 완전 한국이라는 내 말에 Y양이 한국어가 들리고 한식을 먹을 수 있다면 우리에겐 천국 같다,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그들은 한국, 그리고 동양문화를 매우 좋아했다.
언젠가 네덜란드에 가겠다며 헤어졌었다.
그리고 8년을 넘어 2023년 여름 우리는 정말로 네덜란드에서 다시 만났다! 암스테르담 프라이드위크 기간에 간 터라 인파로 가득한 축제 분위기의 그 길 위에서 헤매던 나를 붙잡고 부둥켜안은 두 사람.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인생은 참 재미있는 것 같다. 몽골의 낯선 땅에서 만나, 10년 가까이 서로 연락을 하고, 또 다른 어떤 낯선 땅에서 서로를 만나기도 하는 인연을 만날 수 있다는 게. 또 언젠가 다른 낯선 땅에서 그들을 만나 또 인생의 놀라운 한 페이지를 남겨 볼 수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