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India
2013년 여름.
가히 내가 지금까지 가봤던 길 중 단연 탑 원이라고 할 수 있는, 델리-마날리 / 마날리-레 구간.
제대로 된 배낭여행이 이때 2013년 인도가 처음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겁도, 대책도 없는 여행자였다. 영화 '세 얼간이' 마지막 장면에 나온 '판공초'를 가겠다고 유심이고 로밍이고 없이 'Just Go 인도' 책 하나 들고 떠났던 인도. 마날리, 레 부분만 갈가리 찢어 가방 속에 넣고 책이 가라는 대로 맹신하며 다녔던 나의 첫 여행이었다.
책에는 마날리를 가려면 뉴델리 버스정류장(ISBT)에 가서 표를 사라고 되어있었다. 밤늦게 도착했던 터라 공항에서 노숙하고, 새벽에 나와 시내버스를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갔다. 난생처음 보는 흐물거리는 언어들 사이에서 '마날리?'라고 물어보며 터미널을 한 시간 이상 뒤진 것 같다.
여기저기서 뛰뛰 울려대는 릭샤경적소리, 교통신호 하나 없이 차도 인도 경계 하나 없이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 매캐하게 코끝을 찌르는 오줌냄새, 비닐로 온몸을 칭칭 휘감은 마냥 피부를 습하게 감싸는 공기.
정말 어지럽도록 오감을 자극하는 순간이었다.
겨우 찾은 마날리행 버스는 첫차가 11시 30분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성적으로 11시 30분 차가 아니라 오후에 차를 타서 차라리 그다음 날 아침에 도착하도록 했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때 정말 힘들긴 힘들었나 보다. 무조건 그 공간을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11시 30분 차를 탔다.
게다가 버스는 금방 무너질 것 같은 외관과 다 녹슬어 부서질 것 같은 내관, 창문을 열고 다니는 버스.
울퉁불퉁 길도 뚫고 심지어 강도 건너는 버스.
17시간을 타고 가야 해서 중간중간 휴게소에 내려주는데, 나는 불안해서 차에서 한 번도 내리지 않았다. 그 말을 17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화장실도 가지 않았다는 이야기. 진짜 그때 어떻게 그런 초인적인 힘이 나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여행에서 가장 최고로 꼽는 순간이 바로 이때였다.
해가 지고, 마날리에 가까워 갈 무렵, 차는 산 길을 올라올라 가기 시작했다. 그때 좁은 도로 밑은 낭떠러지였고, 그 아래 멀리 마을이 보여 불빛이 반짝거렸다.
그리고 하늘에는 쏟아지는 별빛.
까만 천 자락 위에 온통 반짝거리는 보석들로 가득했다.
전날 공항서 노숙하고 하루종일 터미널에서 헤매고, 정신줄을 놓을락 말락 하던 와중에도, 내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날카로웠고,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은 어느 풍경보다 아름다웠다.
아침에 도착하길 바랐던 내 소원과 다르게 동트기 전 새벽에 도착했고, 난 또 무슨 용기인지 배짱인지 인도 사람이 태워주는 오토바이를 타고 올드 마날리 숙소까지 갔다. 그리고 자고 있는 주인장을 깨워 들어가, 거지 꼴인 모습에 피식하고 샤워한 후 풀어진 긴장감에 바로 곯아떨어져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S군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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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만난 그 S군은 친구와 둘이서 인도여행을 하고 있었다. 델리-마날리가 인도의 처음이었던 나와 달리 '국민 루트'라고 하는 '델리-자이살메르-우다이푸르-아그라-바라나시' 이런 도시들을 다 다녀오고 마지막으로 북인도로 온 친구였다. 인도가 마음에 들었던 S군과 달리 친구였던 K군은 인도에 오만 정이 다 떨어진 상태였고, (사실 인도는 만만한 여행지는 아니다, 정말로.) 마날리에서 귀국을 결심했다. 그리고 난 S군과 함께 레로 가기로 했다.
S군에게 나의 첫인상은 '미친...?'이었다고 한다.
이미 인도에서 사기란 사기는 다 당하고, 외국인여자에게 인도가 위험한 나라라고 인식하고 있던 S군에게 나는 혼자서 외국인은 타지 않는, 가난한 현지인들만 타는 공영버스를 타고 마날리까지 와서 심지어 인도사람이 야밤에 오토바이를 태워준다는데 그걸 타고 온 '미친년'이었던 거다.
지금 돌이켜봐도 좀 미쳤던 거 같긴 하다. 원래 뭘 모르면 겁이 없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마날리, 레 구간은 여행사를 통해 볼보나 벤을 타고 이동한다. 그리고 나도 S군덕에 마날리에서 레 구간을 벤을 타고 갔다.
근데... 마날리-레 구간은 벤도 힘들었다...
덜컹덜컹 길이 장난 아닌 길에 내 엉덩이도 장난이 아닌 그 길, 그러나 그 고통이 상쇄되도록 뿜어내는 그 풍경력.
해발고도가 올라가 추운 날씨에 있는 옷 다 껴입고, 양말 신고 샌들을 신는 패션테러도 하고. 지금의 초췌한 모습을 남겨야 한다며 한 장 찍어달라고 했다. 부스스한 머리에 쌩얼로 머리를 뒤집어쓰고 옷은 이것저것 다 껴입어 전혀 멋스럽지 않은 모습. 그런데 난 인도에서 찍은 사진 중에 이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든다.
가장 힘들던 순간에, 그러면서 가장 이 현실세계와 멀리 떨어져 있던 순간에, 그때의 나라서.
해발 5000m 구간을 지나는 엄청난 그 마날리-레 구간을 19시간 동안 S군에게 참 많이 의지했다.
레에 도착한 날 너무 늦게 도착해서 숙소를 겨우 얻었고 방이 하나밖에 없어 S군과 같은 방을 써야 했다. 내가 어색할까, 내가 씻을 때 방을 나가 마당에서 기다렸던 S군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리고 기절해서 잠이 들고일어나니 먼저 일어난 S군이 바나나셰이크와 도넛을 사 왔던 기억도 난다.
참 배려심 깊고, 따뜻했던 사람.
동갑이었던 S군은 그 당시 여행과 관련된 학과를 갓 졸업한 상태였고, 난 일을 시작하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그래서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어떤 미래를 살고 싶은지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인도로 떠날 즈음 난 만신창이였다. 처음 담임을 맡아 나름의 열정으로 학급을 운영해 나갔는데, 아이들은 내 손 안에서 벗어나는 느낌이었고, 심지어 여러 아이들이 작당을 하고 나를 골려먹으려 하기도 했었다. 그때 느낀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심지어 교사라는 직업을 그만두어야 하나 생각하던 때이기도 했다. 또 운명이라 여겼던 사람과의 행복했던 1년과 매일 서로를 찢고 찢기는 1년 연애 끝에 종지부를 찍은 때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던 나에게 참 위로가 되었던 친구.
S군은 나는 가보지 못했던 인도의 다른 여행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그래서 인도를 또 와야겠다고 결심하기도 했고, 결국 4년 만에 다시 인도를 갔었지.
원래 내 계획은 레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델리로 가는 것이었지만, 와봤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에 대한 지루함+얼마나 고생할지 아는 그 고통으로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그러다가 델리로 바로 가는 것보다 분쟁지역인 스리나가르로 갔다 내려가는 것이 싸다는 것을 알고, S군과 나는 스리나가르까지도 갔었다. 그리고 델리까지, 무려 2주일을 함께 여행했다.
델리에서 S군 뒷모습만 보고 따라다녔던 터라, 4년 만에 다시 간 델리의 빠하르간지에서 S군의 뒷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내게 2013년 인도여행은 여행에 대한 패러다임을 크게 바꿨을 만큼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첫째, 내가 보고 자란 세상은 공룡발톱의 때보다도 작다.
둘째,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장소보다 사람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
그래서 인도여행 이후에 처음으로 풍경앓이가 아니라 사람앓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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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군은 그 이후 어학연수로 영국에 가서 몇 해 지내기도 했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부산에 게스트하우스를 열어 많은 여행자들을 맞는 사장님이 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서로의 여행지에서 선물을 사 보내기도 했다.
지금도 어디론가 여행 ing인 S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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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군은 2014년 겨울, 교통사고로 엄마가 돌아가신 그때에도 멀리서 조문을 와줬다. 내 옆에 '당연하게' 있는 사람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는 슬픈 사실을 처음 마주한 때이기도 했는데, 그때 조문 와준 사람들에게 더욱 큰 애틋함이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소중한 인연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잘 이어갈 수 있는 현명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S군도 내게 평생 이어나갈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