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희망♣

19화. 나무에서 고운 비가 내린다.

by mark

새벽에 일어나 침대에서 뒹굴뒹굴 한지가 3시간이 넘었다. 2주에 한 번은 힐링을 위해 목욕탕에 간다. 오늘은 다른 때와 달리 늦은 9시 넘은 시각에 집을 나섰다.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자 보이는 어린이 놀이터 한 곁에 오랜 시간을 지켜온 나무에서 낙엽이 흩날리고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왔다.


곱다.

과학시간에 배운 나무가 겨울과 수분부족에 대비하여 에너지보존을 통한 생존을 위한 것이란 논리와는 별개로 풍경이 고왔다. 언젠가 이른 새벽안개 어스름 깔린 바다보다 넓은 호수를 봤던 광경처럼 마음이 더없이 차분해진다.


곱다.

어릴 때 할머니가 예쁜 처자들을 보면, 자주 하시던 말이다. 그만큼 곱다.


곱다.

층층이 쌓인 낙엽들의 색이 곱다.

보도블록에 깔린 작은 바람에도 출렁이는 이 낙엽들도 나무로부터 존재의 의미를 잃었음에도 나무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사라진다.


내 이름에 들어있는 나무 목자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나이 때, 다음 생에 태어나면 나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뭔가 도움이 되고 있음만으로도 누군가에겐 보탬이 되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다.


젊은 날 군대 혹한기에 벙커를 파고 밤새 경계를 설 때 주위에 있던 낙엽들로 가득 채웠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다. 복잡한 머리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경복궁 경내를 걸으며 발길에 사뿐히 밟히는 폭신한 촉감을 느끼며 마음을 쓰다듬던 추억도 스쳐간다.


쉬이 바스락 부서지는 낙엽도 이리 위대하게 빛나는데,

나에게서 발산되는 모든 것들은 이리 선한 영향력을 가졌는가? 자문해 본다.


가을의 자연은 맑고 높고 푸르고 시원하다.

나도 자연의 일부이다. 보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는 고운 낙엽들을 가진 뿌리 깊은 나무가 되고 싶다.


많이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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