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전화
큰 아들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토플 시험을 쳤는데, 아쉽게 교환학생 요구조건이 되는 점수에는 미달되었다는 것이다.
"학원을 다닐걸..." 후회하는 말을 하기에, "괜찮다. 좋은 경험했다 생각해라."라고 말했다.
"다시 공부해서 시험 치면 된다."라는 위로를 건네고 전화를 끊었다.
마음이 차분히 깔아 앉는데, 문득 생각나는 통화 추억들이 있다.
89년 어느 날, 엄마에게 장학금 수령하러 학교에 오라고 했던 뿌듯함
91년 어느 날, 불합격되었다는 안내를 듣고 눈물 많이 흘렸던 고통
94년 봄날, 합격했다고 축하한다고 받았던 기쁨
95년 봄날, 따뜻한 햇살에 비친 푸른 나무들이 좋아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걸었던 두근거림
95년 가을날, 거절할까 두려워한 통화에 "지금 곧 나가" 소리 듣고 설레던 마음
99년 여름날, "거기서 봐요" 약속하던 만남
00년 12월, 결혼 전 통화했던 회자정리
03년 겨울날, 곧 아기가 태어난다고 받았던 말로 표현 못할 경이로움
05년 봄날, 제왕절개수술로 태어난 둘째의 소식을 듣고 새겼던 가장의 무게
06년 6월 말, 새벽 5시가 채 못되어 받았던 아버지가 위독하니 병원에 오라는 생로병사
10년 어느 날, "언제 집에 와요?" 묻는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못한 아들에게 바쁜데 전화했다고
화냈던 잊을 수 없는 죄스러움
10년 겨울날, 오랜 기간 공부했던 동생이 고시에 합격했다고 전화받고 엉엉~울었던 대견함
12년 2월 말, 다음날이 간부 승진 발표날인데 미리 축하한다고 받았던 생각도 못한 기쁨
15년 12월 초, 조직이 통째로 없어진 것을 방송을 통해 알고 받았던 위로
16년 8월 초, 우리나라를 떠나 해외파견 근무를 가며 지인들에게 돌렸던 작별
20년 1월 말, 공항에서 코로나는 4~5월이면 끝날테니 그때 보자고 말했던 희망
21년 12월 초, 해외근무를 마치고 공항에서 작별인사를 했던 주재원 생활의 맺음
25년 가을, 한 동네에 형제처럼 자랐던 친구의 떠남
25년 11월 말, 아쉬움을 달래며 술 주정하던 못남
25년 12월 초, 웬만하면 전화하지 않는 아들에게 받은 묵묵한 아픔
시간과 공간은 달라도 세월을 이어주는 고마운 통신기기가 있음에 고맙다.
그리고, 내 인생에 쌓인 추억들도 하나씩 생각나 토닥거린다.
앞으로 어떤 전화를 받던 나에게 다 약이다. 생각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