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미명의 새벽이 흐릿한 흔적을 지우고는
오늘을 시작해야 하는 가장자리에서 아침을 맞는다
익숙해진 영속의 시간에서 살짝 비켜 서 맞는 햇살에
계절의 약속대로 묻어있는 바람은 가을이다
군데군데 빨갛고 노란 꽃물이 들었다
그 빨갛고 노란 꽃대를 가을바람이 마구 흔든다
내버려 두면 좋은데, 야속한 바람을 따라서 흔들린다
그날처럼 너에 대한 나의 기억도 바람 따라 흔들린다
내 눈길이 닿는 어딘가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
부질없는 쓸쓸함만 남을지라도 가을은 그런 계절이다
9월이 지났다
부스럭거리며 마른 장작이 불타듯 열을 내며 지났다
9월은 차라리 짙은 그리움으로 남았을 시간인데
여전히 내게는 부질없는 쓸쓸함일 뿐이었다
이렇게 보내는 것도 꽤 나쁘진 않다
그리고, 이제는 돌아설 여유조차 없는 시간일 뿐이다
언제부터였던가
가슴속 그 어디쯤엔가 숭숭 구멍이 뚫려
시린 바람이 들락거리면 저도 모르게 깜짝깜짝
몸을 움츠리고 떨어야 했던 계절이
그 계절에 나는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던가
아침이면 얼마나 짙은 후회의 맹세를 했던가
내일이면 이 바람이 지날 테다
천지를 하얗게 물들이는 꽃송이 가득한 북천을 갈지
울긋불긋 코스모스 흔들리는 그 들판이
벌써부터 이토록 그리운 것은 가을이기 때문이다
내게 가을은 언제나 그런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