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에서 진주로 이사를 한 이후에 꽤 오랫동안 심적ㆍ시간적 여유가 생길 때면 아내와 함께, 때로는 혼자서라도 산책을 겸해서 두세 시간 동안 선학산 전망대를 거쳐 봉황대교를 지나 비봉산을 오르곤 했다. 선학산과 비봉산은 진주 시내를 끼고 있는 그다지 높지 않은 동네 뒷산 격의 산이다. 가파른 산언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능선이 길게 뻗어 난 것도 아니기에 산은 맞지만, 산을 오른다는 표현은 조금 쑥스러운 표현인 그런 산인 것이다. 그저 산책한다는 기분으로 편하게 올랐다는 것이 맞겠다.
그해 새봄이 오는 것을 선학산을 오르며 매화와 배꽃을 보며 맞았고, 하얀 벚꽃 꽃무더기에서 봄의 절정을 느꼈었다. 일이 바빠지면서 산을 오르는 횟수는 줄었고, 이따금씩은 남강변으로의 산책으로 계절인사를 대신하게 되었었다.
이후에 며칠 동안, 후배 덕분에 심심하지 않게 다시 오르기 시작했던 선학산과 비봉산. 새벽녘 바다에 나가야 하는 출조가 없는 날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남강변 산책이 전부였는데, 시꺼먼 아스팔트 위를 걷거나 군데군데 시멘트 표면이 일어난 길을 걷다가 세 시간 가까이 흙을 밟으며 산을 오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저기 멀리로 눈 쌓인 천왕봉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하고, 지리산을 바라보는 것은 남강변을 걷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은근한 즐거움이 있는 것이었다.
가끔씩은 상념에 젖어 오래 전의 옛 기억을 되살려 보기도 하고, 또 가끔은 이렇게 나지막한 산을 계속 오르며 조금씩 체력을 회복해서는 예전처럼 지리산 종주에 대한 희망에 불씨를 지펴 보기도 했었던 것이다.
그 언제였었나. 후배아이들 생고생시키고, 옆길로 빠져서 지리산을 내려오다가 후배들 괴롭혔다고 벌이라도 받는 듯이 넘어져서는 얼굴과 팔에 상처를 만들었던 그해 여름이.
"언제 날 잡아서 지리산 한 번 가자!"
"종주가 너무 힘들 듯하면, 1박 2일로 천천히 쉬엄쉬엄 중산리를 거쳐서 천왕봉을 올라 일출이나 보고 오는 거 어때?"
그날 함께 산에 오른 후배에게 넌지시 물었었다.
"죽어요!"... 그러더니 덧붙인다.
"낮은 산이든 높은 산이든, 지금 내가 오르는 산이 가장 힘들다."
그 예전 오래전 그날에, 후배들이 지리산 뱀삿골을 오르며 힘들다고 앓는 소리를 했을 때 지나가는 말로 했던 말이었던 듯한데, 몇십 년이 지난 어느 날에 그때 함께 했던 후배를 통해 그 말을 듣게 되다니...
그 예전에는 후배들이 힘내 주길 바라며 했던 말이었다. 이후에 가만 생각해 보니, 산을 오를 때뿐만 아니라 사람의 인생살이에도 가져다 붙여도 되는 말인 것이다.
내 앞에 닥친 일이 손풀이 몇 차례로 끝날 작은 일이든,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어 누군가의 도움이 함께 해야 할 큰 일이든, 힘들다 힘들다 하며 지레 겁먹고 도망친다면 그 일이 어떤 일인지 알 수가 없고, 결코 해결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일단 손을 뻗어 시작하면 일의 성격도 알 수 있고, 혼자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는 온전히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온전히 그 사람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이만큼 살아오다 보니 혼자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더라.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은 혼자서 해결할 수 없으며,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타인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일이더라.
"산이 낮든 높든.. 지금 내가 오르는 산이 가장 힘들다."
"이왕이면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오른다면 그 힘듦을 줄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