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하루종일 바다에서 보내느라 산에 오르지 못했다. 새벽녘에 나섰던 바다는 전날 새벽녘의 그 바다와 같은 바다이면서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고, 다시금 시린 손에 얼떨떨해지기도 했다.
그랬던 어제보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는 오늘은 식구들 잠을 깨울까 봐 아침해가 활짝 웃는 시간에 집을 나서서 산에 올랐다. 따뜻하게 볕이 내리는 아침 햇살 속으로 내딛는 발걸음은 진득한 무거움과 상쾌한 가벼움이 함께 했다. 구름 잔뜩 낀 흐린 하늘 아래로 하루종일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던 이틀 전과는 사뭇 달랐던 오늘이다.
마음속에서 무겁게 짓누르던 생각을 애써 지워낼 필요가 없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곁으로 다가오는 노부부와 발걸음을 맞추고, 잰걸음으로 지나쳐가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다 보면 마주 오는 사람들에게 길을 내주듯이 생각이 먼저 앞서간다. 그렇게 발걸음을 내딛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은 맑아지고, 무겁게 나를 누르던 생각은 온데간데 없어진다. 지난 계절의 바람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작은 풀꽃들이 앙증맞은 분홍 꽃망울을 맺은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그래, 어쩌면 세상은 그런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곳이다. 어떻게 생각을 갈음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마음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의 삶이란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힘든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시간이 빨리 지나가거나, 시간을 되돌리면 덜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런 것이다. 하지만 삶은 20대에게도, 40대에게도 그 이유는 다를지라도 힘겨운 것일 뿐이다.
정희 : "우리도 아가씨 같은 20대가 있었어요. 이렇게 나이 들 생각하니까 끔찍하죠?"
지안 : ".. 전 빨리 그 나이 됐으면 좋겠어요. 인생이 덜 힘들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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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 : "생각해 보면 어려서도 인생이 안 힘들지는 않았어."
-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에서
돌이켜보면 드라마에서 정희(오나라)의 대사 한 토막처럼 우리의 삶은 어려서도 안 힘들지는 않았던 것이다. 반대로 20대의 지안(이지은)이 빨리 중년의 나이가 된다고 해서 덜 힘들 것도 아닌 것이다. 삶은 그런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이따금씩은 우리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본래의 그 모양이 굴절되어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삶과 세상이 좋게 보일리 없고,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삶과 세상이 나쁘게 보일 리도 없다.
강산에 가수의 노래 중에는 "넌 할 수 있어"란 노래가 있다. 강산에 가수는 한의사 아버지의 영향으로 경희대 한의학과에 진학했지만 중퇴하고, 일본 유학 중 롤링스톤즈와 같은 가수들의 공연을 보고 그 영향으로 가수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노래 "넌 할 수 있어"의 가사 중에는 아래와 같은 부분이 있다.
'후회하고 있다면 깨끗이 잊어버려 가위로 오려낸 것처럼 다 지난 일이야... 너를 둘러싼 그 모든 이유가 견딜 수 없이 너무 힘들다 해도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할 수가 있어... 어려워마 두려워마 아무것도 아니야 천천히 눈을 감고 다시 생각해 보는 거야. 세상이 너를 무릎 꿇게 하여도 당당히 네 꿈을 펼쳐 보여줘.'
그래 지금은 비록 힘든 시기, 나를 둘러싼 그 모든 것들이 견딜 수 없이 너무 힘들다 해도 난 할 수 있다. 그 어떤 어려운 시련이 죽음보다 더 할까. 죽음과 같은 암울한 시간을 견디어 왔는데, 이까짓 어려움이 무슨 대수라고 몇 날 며칠을 엄살을 피우며 보낼 수 있었을까.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돌리고 나니 세상이 이토록 달라 보이는데 말이다. 밝고 활기차게 긍정에너지 잔뜩 뿜어내면서 살아가야 할 일이다. 세상엔 이토록 따뜻하고 밝은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