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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유 May 22. 2024

유실과 습득

그 여름날의 기억 하나

태풍이 북상한다니

눈과 귀는 온종일 기상특보에 닫혀 있다

내일이면 남해안에 상륙한다니

짐이라고는 책가방 하나에 교과서 몇 권이 전부지만

그걸 챙겨 들고 비바람 속을 걸어 바다가 보이지 않는

시내 큰댁으로 태풍을 피해 간다


벌써 몇 년째, 여름이

바닷가로 이사 온 내 유년의 일상은

사각팬티 바람으로 집을 등지곤

곧장 바다로 뛰어들어 멱을 감거나

태풍을 피해 이사를 다니는 것이었다


2년 전 태풍도 무척이나 드셌다

그때까지 때 묻은 기억을 고이 간직하고 있던

내 모든 것을 하루밤새 그 하얀 파도 속으로 쓸어갔다

태풍이 지나고 돌아온 동네가 없어졌다

집이 있어야 할 자리엔 온전한 폐허였

그나마 콘크리트 기둥에 쓰러질 듯 받쳐진 옥상이

집이 있던 자리였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것도 우리 집과 나란히 몇 채만 남은 채로

작은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었던 성열이네는

아예 온데간데 흔적이 남지 않았다


그렇게까진 아니리라 기대하며 집을 지키셨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릎까지 들이치는 파도 속을

헤치고 안집으로 몸을 피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밤 끝내 거칠게 몰아치던 비바람과 파도가 

온 동네를 집어삼켰다고 한다


집채만 한 파도는 송아지만 한 바윗돌 몇 개로

정규네 집도, 희수네 집도 주저앉혀버렸다

영수아버지는 뒤늦게 나오다가 허벅지를 베었는데

양손엔 은행통장과 돼지저금통이 들려 있었더랬다


바다로 향한 길 위에도

집이 있던 폐허의 자리들에도

바윗돌과 자갈돌이 해초더미무심히 뒤엉켰다

어느 집 냉장고와 장롱이었던 나무판자들은

둑방 너머 누런 파도 위를 둥둥 떠다녔는데

이른 아침엔 어디서 휩쓸려 내려왔는지

황소 한 마리는 코뚜레가 매어있고

돼지가 두 마리나 붙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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