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는 이름의 시간에게
우리는 오래도록 ‘우리’라는 단어에 몸을 기대며 살아간다.
그 말은 마치 초겨울, 찬바람 드는 골방에서의 포근한 담요처럼 외로움의 모서리를 덮어주는 것이다.
우리는 늘 ‘우리’라는 말로 스스로를 감춘다. ‘나’라고 말하기엔 너무 외롭고, ‘너’라고 부르기엔 너무 먼 그 거리가 아픈 이유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중간쯤에서 머무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서로의 그림자를 겹쳐 보며, 서로의 빛을 조금씩 나눠 가지며, 또 조금씩 덮으며 그렇게 잊으며 살아간다.
비 오는 날이면, 같은 소리를 들었다.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들으며 함께 창문을 닫고, 귓속의 잔잔한 울림이 우리의 대화였다.
눈 오는 날이면, 세상의 모든 말이 멈추었고 우리는 서로의 어깨에 하얀 침묵을 얹었다.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가까워졌는지도 모른다.
기억의 저편에서조차, 우리는 늘 둘이면서 하나이다.
말이 없어도 괜찮았다. 그저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눈발 속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라는 말이 어쩌면 가장 부드러운 이별의 언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계절은 지나가고, 모든 ‘우리’는 언젠가 ‘너와 나’가 된다.
서로를 품기 위해 만든 말이 결국 서로를 놓기 위한 부드러운 예행연습이었다는 걸 시간이 천천히 알려준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 단어를 좋아한다.
‘우리’ 안에는 네가 있고, 내가 있고, 그때의 공기, 웃음, 그리고 손끝의 온기까지 함께 들어 있으니.
‘우리’라는 그 말은 이미 끝나버린 사랑의 증거이자, 한때 분명히 존재했던 온기의 기록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혼자 걸으면서, 무심코 그 단어를 중얼거린다 - ‘우리’.
그 한마디 속에는 여전히 너와 내가 살고 있다. 비록 이제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걷고 있을지라도, 그 말 하나만은 여전히 우리의 시간 위에 조용히 남아 있다.
문득, 생각해 보면.
사람과 풍경은 얼마나 닮아 있을까. 누군가는 사람을 잃고서야 풍경의 깊이를 알게 되고, 누군가는 풍경을 잃고서야 그 사람의 온도를 깨닫는다.
우리가 함께 바라보던 계절은 이미 저만큼 흘러가 버렸지만, 그날의 공기와 빛, 그리고 우리의 그림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시간은 사람을 흩뜨려 놓지만, 기억은 언제나 풍경의 일부로 남는다. 그 풍경 속에서 여전히 너를 본다. 낡은 벤치의 그림자, 창문에 흐르는 빗물, 골목 끝에 스며드는 오후의 햇살, 그 속에는 여전히 ‘우리’의 잔향이 있다.
어쩌면 사랑이란, 한때 같은 풍경을 바라보던 두 사람이 서로의 시선에 머물던 시간을 기억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기억이 내 안에서 아직 따뜻하다면, 비록 세상은 변하고 사람은 떠나도, 여전히 하나의 ‘우리’로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