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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된 기억의 거리

by 몽유

풍경이 된 기억의 거리


사람은 때때로 풍경 속에 자신을 남긴다.

함께 던 길목, 오래된 담벼락의 그림자, 그 위로 스며드는 늦은 오후의 햇살까지. 이제 그곳에는 아무도 없지만, 여전히 ‘우리’가 함께 걸어가던 그 모습을 그려보곤 한다.

어쩌면 사람이 떠난 자리에 남는 것은 발자국 몇이 아니라, 그를 기억하는 풍경의 표정인 듯하다.


도시의 거리는 수많은 이별과 만남이 겹쳐진 기억의 지도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 길에서 웃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같은 자리에서 울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웃고, 울었던 사람들은 사라졌지만, 그날의 공기와 그때의 빛은 이상하리만큼 오래 남는다.


때로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낯선 거리에서 익숙한 감정에 갑자기 젖어든다. 그건 아마도 잊었다고 믿었던 기억이, 풍경의 얼굴을 빌려 다시 내 앞에 서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런 순간, 멈춰 서서 가만히 생각해 보곤 한다.

기억이란 결국 ‘사람의 그림자가 머물렀던 풍경’이 아닐까.

누군가와의 시간이 그곳을 지나며 색을 입히고, 그 색이 바래며 삶의 결이 된다.

그리움이 짙을수록, 풍경은 더 따뜻하게 빛난다.


이제는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우리가, 언젠가 같은 거리의 조금 멀어진 어딘가에서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날이 올까.

그때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바람을 마주 하고도 조용히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바람 속엔 여전히 우리의 시간이 있고, 바람이 스쳐간 자리에서 너의 온기와 나의 그림자가 다시 만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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