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결의 끝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던 날
바람인지, 잊혀진 언어인 줄 알았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그저 흩날리는 눈 속에 서 있었다
돌이끼 묻은 비석 하나 세워지지 않은 땅에
누군가의 발자국만 어지럽다
곧 시간이 지나면
그것마저 눈결에 스며들겠지
세상은 이미 조용했고
그 침묵이 내 마지막 울음이 되었을 때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천천히 희미해지는 과정
내 그림자를 털어내는 일이었다
이제 내가 누구였는지도 잊었다
이름도, 발자국도, 남겨진 울음도
모두 흩날리는 눈결처럼 사라졌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가볍다
마치 대답하지 않은 그 순간부터
이미 모든 이별이 끝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