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산책을 해야만 하는 이유
대뜸 샷아웃을 날려도 괜찮다면, 나는 이슬아 작가를 존경한다. 그녀가 만들어낸 모든 말의 조합을 아낀다. 그녀는 남들이 어렴풋이 가졌던 느낌을 가장 적확한 표현으로 꼬집어 낸다. 그것은 너무도 적나라해서 두 손 두 발을 다 들어올린 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다음은 그녀가 장기하를 두고 적었던 메모다.
"그는 산책을 오래 하고 돌아온 사람처럼 글을 쓴다." (출처: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이슬아)
나는 산책을 오래 한 적이 많고, 장기하의 책도 몇 권 읽어보았다. 하지만 그 둘을 연결시킬 생각은 단언컨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산책과 장기하를 엮은 것은 가장 적확하면서도 고개를 10번쯤 끄덕이게 하는 비유다. 산책을 오래하면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장기하는 생각을 아주 많이 한 글을 써내기 때문에...혹시 이슬아는 글쓰기계의 흰색 마법사, 간달프가 아닐까?
서론이 길었다. 주접은 이정도로 마치고 오늘은 산책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슬아 작가가 꼬집어낸 것과 같이 산책은 사유의 통로이다. 산책을 하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각들이 머릿 속을 군림한다. 그것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뒤엉켜 TV 방송처럼 동시 상영되곤 한다. 한 채널에서는 헤어진 전 연인을 상영하고, 다른 채널에서는 저녁 메뉴를 상영하며, 또 다른 채널에서는 등에 땀이 찬 것을 뒷 사람이 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상영한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TV가 모든 채널을 동시에 송출하는 것처럼, 산책을 하는 동안 내 머릿 속도 이 모든 걸 동시에 해낸다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산책이 끝나면 이 뒤죽박죽의 생각들이 다 정리가 된다. 나도 모르는 새에 그렇게 되어 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전 연인을 향한 미련의 스위치를 끄고, 저녁 메뉴를 정하고, 뒷사람이 땀을 봐도 큰 일이 일어나지 않음을 자각한다. 대단한 일을 해낸 것 같지만 사실 누구나 다 똑같다. 그런 점에서 산책 시간은 생각 시간과 동음이의어다.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이다. (어떤 생각은 산책 후에도 여전히 뒤죽박죽인 경우가 있는데, 그건 생각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그렇다. 그럴 땐 산책을 오래, 아주 오래 해야 한다.)
나는 산책이 좋다. 산책은 이슬아 작가가 조합한 문장 만큼이나 단정하고 적확한 생각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무엇보다 산책이 가장 좋은 이유는 돈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님도 보고, 뽕도 따고이다. 나는 쉬지 않고 5km는 걸을 수 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좀 더 무리해도 좋다.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니고, 이렇게 하면 대중교통비가 많이 세이브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었다. 요즘은 버스비, 지하철 요금이 왜이리 비싼지. 빨간 버스라도 타게 되면 3000원은 각오해야 하는데 이정도면 내겐 아주 큰 수확이다.
고작 3000원 아끼려고?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솔직히 나도 가끔 그렇다. '고작'은 마법의 단어다. 꼭 흰색 마법사 간달프 같다. 무엇이든 작아보이고 하찮아 보이게 만드는 마술을 자유자재로 해버리니까. 그래서 나는 고작이 떠오를 때마다 자중하려 노력한다. "고작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거지? 그럼 얼마부터 고작이 아닌 거지? 오천원? 만원?"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러면 고작에는 정답이 없으므로 결국 한 푼이라도 아끼는 게 현명하다는 모범답안으로 돌아올 수 있다.
모범답안 실현을 위한 걷기 노하우를 소개하겠다.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무조건 걸어간다!"라는 가치관을 머릿속에 박아두는 것이다. 그러면 많은 것이 쉽게 해결된다. 도서관에 가야한다고 가정하자. 지도앱을 켠다. 도서관까지 가는 도보로 가는 방법을 검색한다. 시간을 확인한다. 걸어간다. 끝이다. 참 쉽죠?
세상 모든 일이 이렇게 쉽기만 하면 좋을텐데, 우리 몸은 대체로 머리와 다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나도 그럴 때가 있다. 걷는 게 싫을 때가 있다. 그럴 땐 그냥 대중교통을 탄다. 이때 중요한 것은 헉?하는 마음이다. 거리와 시간을 보았을 때 "헉? 이건 안 되겠는데?"하는 마음이 든다면 대중교통을 탄다. 보통 40분 이상이 뜨면 헉? 한다. 하지만 요즘 같은 가을 날씨에 40분은 계절을 느끼기 딱 좋다. 한편 여름, 겨울엔 20분도 버겁다. 이는 어디까지나 느낌, 다시말해 체감의 영역이다. 중요한 것은 '걸어간다 -> 헉. 오늘은 안 되겠는데? -> 대중교통'하는 생각의 흐름이다. 처음부터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떠올린다면 목적지엔 빨리 도착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진정한 짠순이를 향해 가는 길 위에서는 미아가 되고 말 것이다.
걷기를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걷는 시간이 아깝다고, 그 시간에 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따져묻는 사람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산책은 생각 정리를 하고, 돈을 세이브하고, 건강해지기까지 하는 건전한 취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왜 이다지도 완벽한 비건식단을 먹지 않느냐고 따지면 나도 곧장 입을 꾹 닫게 될 것이므로... 다만 권할 뿐이다. "가을이 왔네요. 같이 걸을까요?"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