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만 22살에 교사로 임용이 되어 첫 월급을 받았다. 200만원 초반이었다. 쥐꼬리만한 교사 월급이라지만, 당시엔 그게 큰 돈으로 느껴졌다.(지금도 작은 돈은 아니다. 여전히 월급의 앞자리 수가 같기 때문에...) 알바로 30만원, 과외로 25만원을 벌어 도합 55만원으로 한 달을 살던 22살에는 그랬다.
나는 그걸 한 푼도 잃을 수가 없었다. 첫 달 월급을 가족과 오래된 친구, 당시 사귀던 연인에게 탈탈 털린 뒤 두 번째 월급부터는 차곡차곡 모았다. 처음에는 그냥 통장에 넣어두었다. 그러다 엄마가 적금을 해보라고 했다. 그 후론 매달 월급의 60%를 적금에 넣었다. 그래봐야 100만원 초반이었다. 작은 월급을 또다시 작게 쪼개어 한 톨도 흘리지 않고 싹싹 긁어 모은 것이다.
적금에 넣을 돈으로 주식을 살 수도 있었을 테다. 실제로 어린 나이였음에도 일찍이 재테크에 눈을 뜬 친구가 있었다. 대학 동기인 쩡이었다. 지하철 의자에 나란히 앉은 쩡과 나는 처음으로 돈 이야기를 했다. 교사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맨날 떡볶이나 연애 이야기만 하던 우리였는데... 쩡은 모든 현금을 주식에 다 넣었다고 했다. 나는 그게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공부를 했든, 어떻게 기업 가치를 분석했든 간에 한 푼이라도 잃을 가능성이 있다면 위험한 것이라고 막연히 결론지었다. 그때의 나는 쩡에 비해 얼마나 어렸던 걸까.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은 가슴이 쓰리디 쓰리다. 그때 쩡을 따라 뭐라도 사두었다면... 인터스텔라의 명장면처럼 책장 사이로 보이는 지하철 군중 속 나에게 간절히 엔비디아를, 아니면 비트코인을, 그도 아니면 S&P라도 사라고 말해주고 싶다.
바야흐로 투자의 '투'자도 모르던, 투자라면 눈과 귀로도 모잘라 콧구멍까지 막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래도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예금까지는 알았다. 나는 적금 만기가 된 돈을 '옳다구나!'하며 예금에 넣었다. 1년 동안 꾸준히 모은 적금은 한 푼도 빠짐 없이 예금으로 이름만 바뀌었다. 새로 받는 월급은 새로운 적금으로 모았다. 그것 역시 그대로 예금이 될 운명이었다. 그래도 나름 욕심을 내어 이자를 많이 주는 예적금을 번번이 찾아다녔다. 고작해야 0.5% 차이였을텐데도 말이다. 참으로 성실하고, 참을 수 없이 지루하며, 눈물나게 안타까운 시절이다.
그래도 열심히 모으긴 했다. 월급 뿐만 아니라 성과급을 받아도 월급 통장을 스쳐지나갈 뿐, 전부 카카오뱅크 세이프박스(파킹통장)에 밀어넣었으니. 성과급으로 명품 가방을 지르는 동료, 할부로 차를 바꾸는 선배를 그저 훔쳐보며 군침만 흘렸다. (마침 욜로가 유행할 때였다.) 그때는 그게 나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투자도, 소비도 내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니 지름신이 강림한 누군가가 부러울 것도, 박탈감을 느낄 것도 없었다. 문득 '가장 행복한 사람은 멍청하면서도 자신이 멍청한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멍청하면서도 그런 줄 몰라 행복하기만 했던 20대 중반이었다.
그때는 투자보다 재미있는게 너무 많았다. 정말이지, 너무 많았다. 아 모르겠고 일단 놀러 나가야 하니 할 수 있는게 예적금 뿐이었다. 그렇게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다 투자를 시작했다. 1년 전부터다. 6년을 꼬박 예적금으로만 날려보낸 후였다. 재테크 초반에는 우선 씨드를 모아야 한다느니, 씨드가 있어야 뭐를 해도 남는 게 있다느니 하는 재테크 계의 불문율은 맹세코 몰랐다. 단지 놀만큼 놀고, 그래도 미련이 남아 조금 더 미루고, 그러다 때가 온 것이었다.
지금은 투자계의 스테디셀러와 신간을 두루 섭렵해가는 과정에 있다. 여러 권의 투자서를 읽다보니 대개 두 가지 패턴으로 반응하는 습관이 생겼다. 첫째, 어디선가 읽어본 내용이라 따분하거나 아니면 둘째, 너무 심화라 알아먹을 수가 없거나. 요컨대 아직 한참 멀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감사한 사실이 있다. 많은 투자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을 종합해보았을 때 지난 6년 동안의 시간이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아깝게 긴 시간을 흘려보내긴 했으나, 돈을 흘려보내지는 않았다. 그것들은 인플레이션을 제하고는, 한 푼도 사라지지 않고 그자리에서 성실하고 지루하고 안타깝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흔히들 말하는 '씨드'가 되어서.
괜히 잘 알지도 못하면서 투자해보겠다며 이것 저것 기웃거리지 않은 것. 아둥바둥 아껴보겠다고 애썼던 날들. 어울리지 않는다며 단념했던 소비들. 조금이라도 더 주는 은행을 찾아보던 노력들. 그것들이 한 데 모여 씨드 머니가 되었다. 씨드 머니가 얼마만큼 중요한지는 잘 모른다. 그냥 전문가들이 그렇다고 말할 뿐이다. 다만 내가 경험했던 것은 좋은 기회가 왔을 때 고민이라도 해 볼 여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씨드가 있으니 매수 버튼을 누를 지 말 지 고민 했다. 만약 씨드가 없었다면, 다시 말해 성실하고 지루한 시간이 없었다면, 어차피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애초에 무관심 했을지도 모른다.
내 글을 읽는 당신은 짠순이가 되고 싶은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짠순이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일 것이다. 내가 그렇듯이 말이다. 그러니 우선 씨드를 모으자. AI 관련주나 코인이 집요한 모기처럼 귓바퀴 주변을 왱왱 거리더라도 손을 휘휘 저어 쫓아내자. 지루하고, 재미없고, 속이 바짝 타들어가더라도 우선은 현금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다. 그때가 오면 당신은 그저 매수 할 지 말 지만 결정하면 된다. 현금이 부족해서 좋은 기회를 지켜만 보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대체 얼마를 모아야 하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이는 투자서마다 의견이 다르다. 또, 지금 얼마로 정하더라도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받을테니, 금액 책정이 큰 의미가 있지 않다. 그래서 조심스레 제안한다. 월급의 절반, 딱 그만큼만 3년간 모아보자. 눈과 귀로도 모잘라 코까지 다 막고 3년이면 된다. 적금 단위는 1년, 만기된 돈은 그대로 예금에 넣어서 딱 3사이클만 돌려보는 것이다. 그러려면 소비를 확 줄여야 할 수도 있다. 월세와 생활비때문에 영혼까지 끌어모아야 할 수도 있다. 나역시도 50%를 저축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도 해보는 것이다. 눈 딱 감고, 딱 3년만! 투자는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5년 후의 나를 상상해본다. 그때가 되면 또 다시 지금이 안타까울 수 있다. 인터스텔라의 명장면을 떠올리며 왠 회사 이름을 들먹이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다행이다. 그것은 내가 5년 동안 성장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내가 부끄럽고 과거의 내가 안타까울 수록, 현재는 그보다 나아졌다는 뜻이니까. 그러니 지금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자. 그게 씨드 머니를 모으는 것이라면. 재미없고 지루하고 안타깝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