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괜찮겠지?' 하며 발을 들였다가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일들이 있다. '딱 한 입만!'하며 집어 든 젓가락은 기어코 라면 한 봉지를 끓이게 만든다. '10분만 볼까?' 하며 집어 든 스마트폰은 한 시간을 훌쩍 지나있게 한다. 전부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들이다. 우리의 강인한 의지는 유혹의 한 복판에서 너무 쉽게 타협되곤 한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건 한 입만 먹는 라면과 딱 10분만 보는 스마트폰이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별 수 있나? 싶다가도 진정 간절하면 별 수를 다 떠올려 보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다이어트는 평생 해야하는 것이고, 스마트폰은 언제나 가장 유력한 시간 도둑 용의자라 늘 경계해야 하므로 나는 별 수를 다 떠올려 보았다. 그 중 가장 쉬웠던 건 애초에 발을 들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맛있어 보여도 절대 입에 대지 않고, 스마트폰은 잠깐만이라도 절대 보지 않는다. 내 의지가 강인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유혹의 한 복판에서 멈추어야 할 가능성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신용 카드를 쓰지 않는다. 혹시나 하여 애초에 발급을 받지 않았다. 내 나이 29살. 신용카드가 없어도 생활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또래보다 저축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신용카드의 좋은 점을 모르지 않는다. 실제로 나는 체크카드만 쓰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여러 혜택을 놓쳤다. 우선 할부 없이 꽤 큰 돈을 한 번에 지출해야 했다. 한 번에 내야 하는 꽤 큰 돈은 정말로 큰 돈 그 자체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 덕분에 구매하기 전에 신중할 수 있었다. 이번 지출로 포기해야 할 기회 비용을 더 꼼꼼이 따져볼 수 있었다. 어떤 지출은 깔끔히 포기함으로써 더 많은 저축을 가능케 하기도 했다.
페이백이나 여러 가맹점에서 주는 혜택도 놓쳤다. 혜택이 많은 인기 신용 카드는 연회비나 사용 실적을 훨씬 웃도는 금전적 이득을 가져다준다고 알고 있다. 이런 혜택을 똑똑히 잘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 라면을 딱 한 젓가락만 먹고, 스마트폰을 딱 10분만 볼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면 카드회사들은 진작에 파산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신용카드 회사들이 의도하는 방향 대로 정확히 움직일 인간임을 알기에, 여러 혜택을 포기하는 대신 안전한 선택을 했다.
더불어, 내가 읽은 수 많은 재테크 서적을 눈 씻고 찾아보아도 신용 카드를 이용하라는 말은 없었다. 갖은 혜택을 늘어놓으며 체크카드 대신 신용카드를 사용하라는 글은 책자에나 있을 뿐이다. 그게 어느 책자냐 하면, 카드사가 만든 책자이다. 카드사가 얼마나 똑똑한데 그들이 설마 손해보는 장사를 할까? 주변을 둘러보면 카드사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일례로 신용카드를 애용하던 내 지인은 항상 현금이 없었다.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 이라는 표현은 정확히 그녀를 묘사한 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만나기만 하면 자기가 대표로 계산을 했다. 나에게 더치페이 한 현금을 받아야 생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카드깡은 도시괴담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물론 그녀를 비난할 마음은 없다. 그녀를 비난할라치면, 너무 많은 사람들을 함께 비난해야 공평할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 똑같다. 나역시도 강한 의지력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도무지 자신이 없다. 그러니 별 수 있나? 애초에 신용카드를 만들지 않는 수 밖에. 카드사가 주는 혜택이 아무리 눈에 밟혀도 체크카드만 쓸 수 밖에.
이따금 스스로에게 어느 정도까지 허용적이어야 할까?하는 고민이 들 때가 있다. 라면과 스마트폰은 때때로 작은 위로나 휴식, 기분전환이 되기도 하니까. 마찬가지로 신용카드도 어느 정도만 허용한다면 작은 위로나 휴식, 기분전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수록 마음을 단정히 해야 한다. 우리의 짠순함은 당장은 좀 불편하더라도 먼 미래에 부자가 되는 것에 그 목표가 있다. 우리는 멀리 보는 새, 높이 나는 새가 되어야 한다. 한 번의 허용은 두 번의 허용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한 젓가락이, 10분이 무서운 것은 그래서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강인하지 않다. 한 번의 허용이 위태로운 리스크가 되어 우리를 괴롭힐지 모른다. 카드깡을 일삼는 그녀도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용카드를 만들지 말자. 수요가 생기지 않도록 애초에 공급을 하지 말자. 새로운 발명품은 발명되기 전까지는 필요를 느낄 수 없다. 그럴 수 밖에.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편리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편리와 풍요의 유혹을 맛 보게 하지 말자.
만약 이미 신용카드가 있다면? 이미 공급이 되어버렸다면? 그렇다면 한 번 더 고민해보자. 나는 과연 라면을 딱 한 젓가락만 먹을 수 있는 사람인지. 스마트폰을 딱 10분만 볼 수 있는 사람인지. 당신이 얼마만큼 강인한 의지를 가진 사람일진 모르지만 '조금은 괜찮겠지?' 하며 발을 들였다가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일들이 우리 일상에는 아주 많다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