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돌이킬 수 없는 것에는 아끼지 않는다.
우리가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돈과 관련된 말 중에 '돈으로 해결되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다.'라는 문구가 있다. 나는 이 문구에 뼈저리게 공감했던 경험이 슬프게도 많았다. 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느끼는 그 무력감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러니 돈으로 해결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미리미리 대비해 놓아야 한다. 한 번 잃으면 돌이킬 수 없지만, 그 전에 대비할 수 있는 영역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건강, 둘째는 인간관계, 그리고 셋째는 피부다.
(1) 건강. 건강은 도무지 돌이킬 수가 없다. 아무리 일론 머스크라 하더라도 한 번 잃어버리면 되찾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나는 건강을 잃지 않기 위해 돈을 잃는 선택을 한다. 가공식품이 훨씬 저렴한 것을 알지만 신선식품 코너로 발길을 돌린다. 조금이라도 아프면 바로 병원에 가고, 약을 꼬박 챙겨 먹는다. 신체 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을 위해 해외여행과 여름 휴가를 망설이지 않는다. 혹시 건강에 투자하는게 아깝다면 다음의 명언을 새겨두자.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신체에서 나오고, 건강한 신체는 건강한 통장에서 나온다." 누가 한 말이냐면, 내가 방금 지어낸 말이다.
(2) 인간관계.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애덤그랜트의 <기브 앤 테이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성공하려면 먼저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giver)'가 될 것이다. 만약 두 문장으로 요약하는 것을 허락해준다면 '그게 어려우면 최소한 받은 만큼은 돌려주어야 한다.(mature)'라는 문장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제외한 모든 관계는 필연적으로 기브 앤 테이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사람들과 잘 지내야 살 수 있고, 그러려면 마음을 써서 무언가를 건네야 한다. 이 때 돈을 많이 쓰는 것 만큼 잘 표현되는 마음도 없다.
(3) 피부. 아아. 피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니 한숨부터 나온다. 피부는 건강만큼 한 번 잃으면 돌이키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나역시도 돌이키기엔 너무 늦어버린 것 같지만, 지금이라도 피부를 위해 아낌 없이 투자한다. 내 피부에 맞는 제품을 찾기 위해 유목민처럼 이것 저것 사보기도 하고, 심지어는 30만원이나 하는 미용 기기를 사기도 했다. 사실 피부는 대한민국 여성 + 악건성 피부를 지닌 입장에서 중요한 항목이긴 하다. 하지만 잃은 후에는 돈을 아주 많이 써야 되찾을 수 있으니 미리미리 준비해서 나쁠 건 없다.
건강, 인간관계, 피부의 공통점은 돈을 투자하면 그만큼 결과를 내어준다는 것이다. 내가 자꾸만 소비한다고 말하는 대신, 투자한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나는 투자한 것이 기필코 돌아올 때 아끼지 않는다.
3. 경험에는 과감히 투자한다.
소비에도 종류가 있다. 어떤 소비는 문자 그대로 소비이다. 자동차, 옷, 밥, 커피 등 소모품들이 여기에 들어간다. 반면 어떤 소비는 소비인 척 하지만 사실은 소비가 아니다. 부동산이 그렇고 주식이 그렇다. 그리고 또 어떤 소비는 소비이면서도 잘 하면 소비가 아니게 된다. 나는 이 마지막 소비를 가장 좋아한다. 그건 바로 경험이다.
지금 해두면 언젠가 다 쓸 때가 있다는 말을 좋아한다. 당장에 이익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손해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경험도 이런 속성을 띈다. 경험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든 쓰임이 있다. 경험이 소비이면서도 잘 하면 소비가 아니게 되는 이유이다.
세이노 아저씨는 화장실이 고장 나서 수리기사를 부를 때, 수리 과정을 유심히 지켜본다고 했다. 눈으로 배워놓으면 이후에 또 고장나더라도 직접 고칠 수 있어서 그런다고 했다. 세이노 아저씨처럼 배움적 경험은 돈을 절약하게 해준다.
또, 어떤 경험은 취향을 알려준다. 직접 해봐야 좋은 지 싫은 지 알 수 있으니까. 나는 한 사람의 취향의 모음이 그를 설명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취향을 아는 것은 곧 나를 아는 것만큼 중요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하면 행복해지는지 아는 것은 우울이나 절망을 이기는 필승전략이다. 우울증이 흔한 질병이 된 요즘 같은 세상에는 더더욱.
또또, 어떤 경험은 취미를 만들어준다. 취미는 모험적인 첫 소비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과감히 돈을 쓴다. 취미는 흑백 영화 같은 일상을 칼라 영화로 만들어주니까. 나는 풋살을 좋아하는데, 이에 들어가는 모든 부대비용은 조금도 아깝지 않다. 왜냐하면 풋살은 내가 다음 주까지 살아 있어야 하는 가장 명백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경험은 수입을 늘려줄 발판이 되기도 한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요즘은 경험으로 돈을 버는 유튜버가 아주 많다! 주식 유튜버, 여행 유튜버, 풋살 유튜버... 모두 자신의 경험을 팔아 돈을 번다.
잠깐 샛길로 새도 이해해준다면, 가장 가성비 좋은 경험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작가가 생고생하며 깨달은 내용을 가장 저렴하게 간접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 책을 사거나 도서관에 가는 비용은 아깝지가 않다.
실컷 경험의 실용성에 대해 열거했지만 사실 그냥 해보는 것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 한 번 사는 인생 아무리 짠순이라도 알록달록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다.
지금까지 선택형 짠순이가 돈을 쓰는 철학에 대해서 정리해보았다. 철학이라는 거창한 말을 썼지만 커피 사이즈업 500원 만큼이나 소소하다. 나중에 보면 '고작 저런 데에 돈을 썼단 말야?'라며 스스로를 자책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은 이렇게 산다. 아무쪼록 오래 된 물건을 아껴 쓰고, 건강을 챙기며, 좋은 사람들과 함께, 알록달록한 경험을 하며 살고 싶은 마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