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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May 12. 2024

공부 잔소리를 참을 수 없다면.

미끼를 던지자. 계속 던지자.

 참으려 해도 도무지 참을 수 없는 말.

좋게 돌려서 얘기해보려 해도 절로 짜증이 묻어 나오는 말.

'공부 좀 해라.'


 사랑스러운 당신의 자녀에게

건강하게 자라기만 한다면 더 바랄 게 없는 당신의 자녀에게

공부 잔소리를 하고 싶지 않다면.

그럼에도 자꾸만 터져 나오는 잔소리를 참을 수 없다면.








 나는 공부가 너무 싫은 아이였다. 누가 때리지 않는 이상 숙제를 해가는 법이 없는 아이였다. 그랬던 내가 '이것'이 생긴 후부터 바뀌었다. '이것'을 위해 늦게라도 공부를 시작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행동을 했다. 다소 가학적으로 느껴질 만큼.


 '이것'을 위해, 공부를 위해, 많은 것들을 자의로 제거했다. 가장 먼저 제거한 것은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을 2G 폰으로 교체하고 꼭 필요한 연락만 가능하도록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다음은 친구를 제거했다. 자발적인 왕따가 되었다. 야자를 땡땡이치고 은영이 집에 가서 엽기떡볶이를 시켜 먹자는 친구들과 더 이상 어울릴 수 없었다. 쉬는 시간도 제거했다. 학교나 학원 쉬는 시간이 되면 이어폰을 끼고 수학문제를 풀었다. 졸음이 쏟아지지 않는 이상 예외는 없었다. 두려움도 제거했다. 독서실에 남자 아르바이트생이 출근하는 날이면, 혼자 남은 새벽에 그가 나를 어떻게 할까 두려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집에 일찍 갈 순 없었다. 남자 아르바이트생과 단 둘이 남는 한이 있더라도 그 어둑한 공간에서 한 문제라도 더 풀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이었을까. 조금 부끄럽지만 '이것'은 성균관대학교였다.


고3때 적은 스터디 플래너. 지금은 모교가 된 경인교대는 2지망이었다.


 풉.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는 애다. 어이가 없기도 하다. 고작 대학교를 위해 그렇게 공부했다니. 무슨 과를 가야겠다도 아니었다. 그냥 그 학교에 합격하는 것이 목표였다. 무조건 가고 싶다고, 내 목표는 오직 그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목표 그 이상, 집착에 가까웠다.


 집착의 시작은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중2의 어느 봄날이었다. 가족들과 점심 식사를 하던 중 우연히 성균관대학교 이야기가 나왔다. 그냥, 그냥 나왔다. 나는 뜬금 없이 물었다. 그냥 물었다. 별생각 없이.

"엄마, 나도 지금부터 공부하면 성균관대학교 갈 수 있어?"

그러자 엄마가 대답했다.

"당연하지. 지금부터 하면 무조건 갈 수 있어."

내 엄마는 웬만해서는 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말이 나를 자극했다.

"진짜? 이렇게 공부를 못하는데도?"

나는 몇 번이고 되물었다. 성균관대학교는 당시에도 이름 꽤나 날리는 학교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공부를 잘하던 고등학생 언니가 거들었다.

"당연하지. 지금부터 하면 SKY는 어려워도 성대 정도면 가고도 남지."


 그때 나는 가슴이 조금 벌렁였던 것 같다. 왜 있잖은가. 게임을 할 때 '해볼 만 한데?'라는 생각이 들어야 계속 도전하고 싶어진다는 심리. 그와 유사한 심리였던 것 같다. 나는 가슴이 조금 벌렁였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악물고 해보고싶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상하고도 바보 같지만. 어느 날 갑자기 툭. 아무 이유 없이 툭.


어쩌면 내 엄마가 던진 수 없이 많은 미끼들 중 하나를 물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돌이켜 생각해 본다. 만약 누가 시켰다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까? 절로 고개가 가로 저어진다.


 몇몇 아이들을 떠올려본다. 학원을 째고 PC방에 가는 아이들. 답지를 보고 숙제하는 아이들. 선생님 눈을 피해 스마트폰을 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공부를 잘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 있는데도 그럴 수가 있을까? 스스로 해낼 의지가 없다면 비싼 학원도, 유명한 일타 강사도 시간 낭비, 돈 낭비가 아닐까?


 "공부 좀 해라."

잔소리하기 전에 아이가 자기만의 목표를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건 어떨까.

내재적 동기를 자극해 보는 건 어떨까.

직업이든, 꿈이든, 대학교든, 뭐든 상관 없다.

미끼를 던지자. 계속 던지자. 다양한 변주 기법을 사용하여 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자극하자.

혹시 아는가? 어느 날 갑자기 툭. 아무 이유 없이 툭. 아이의 마음에 얻어걸릴지도. f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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