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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May 05. 2024

초등학생, 학원에 가야 하나요?

당장 내일 볼 단원 평가 점수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학부모 상담 주간이 되면 꼭 한 번씩 듣는 질문이 있다.

“선생님, 우리 아이 학원에 보내야 할까요?“

“저희 한율이만 학원에 안 다니는 것 같아서 불안해요.”    

길지 않은 교직 경력임에도 많이 들어본 질문이다.


 공부를 못 하는 김한율은 학원에 꼭 가야할까? 불안해하는 학부모님께 뭐라고 대답해주는 것이 좋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이의 성향에 따라 다르다. 어떤 아이는 학원에 보내는 것이 좋고, 어떤 아이는 지금처럼 자유롭게 생활해도 좋다. 그렇다면 아이의 어떤 성향을 파악해야할까?     




 수업 중 모둠 활동을 하다보면, 유달리 위축되는 아이가 보인다. 보통은 공부를 못 하는 아이다. 선생님 말씀이 이해가 안 되고, 지금 뭐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는 아이. 같은 모둠의 공부 잘하고 목소리 큰 친구들에게 떠밀려 시키는 것만 하는 아이. 친구들로부터 “공부 못하는 아이, 어딘가 못 미더운 아이”로 낙인 찍힌 아이.


 최악인 것은 이런 현상이 공부 이외의 영역까지 적용된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실과 음식 조리하기’와 같은 수업이다. 음식 만드는 것은 특별히 공부를 잘 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이 아이는 평소보다 목소리가 커지고 말하는 횟수도 늘어난다.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친구들은 이미 그 아이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는 무시당하는 것에 익숙해진다. 점점 더 자신감을 잃어간다.


 이런 아이들은 학원에 가야한다. 학원에 가서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을 확실히 다지고 익혀야 한다. 그리하여 자신감을 되찾아야 한다. 친구들에게 무시 받지 않도록, 학교에서 위축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피어오르고 있는 열등감의 싹을 잘라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다. 나도 하면 된다. 같은 모둠 목소리 큰 친구의 말이 틀리고 내가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공부의 밑 바탕이 된다.






 나도 위축된 아이였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S전자에 다니는 학부모의 자녀들이 많아서 그런지, 친구들이 다 똑똑했다. 같은 모둠 아영이는 선생님보다 더 똑똑한 것 같았고, 현서는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난 조금 외롭고, 의기소침 했던 것 같다. 어차피 틀릴 거라는 생각. 내 의견을 제안해봤자 친구들은 현서 말만 들어주겠지 하는 생각. 그런 생각들이 내 입을 닫게 했다.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난 못 할 거라고 포기하게 했다. 실시간으로 자존감이 떨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그 때는 몰랐다.


 그러다 수학 과외를 받았다. 14살 무렵이다. 대단한 과외는 아니었다. 동네 아파트에서 아줌마 선생님이 하는 과외였다. 지금 생각해도 행운인 것이, 아줌마 선생님은 수학만 가르쳐주시지 않았다. 자신감도 함께 가르쳐 주셨다. 이렇게 풀면 너도 할 수 있다고. 미리 조금만 공부하면 수업 시간에 발표를 할 수 있다고. 아영이, 현서가 틀린 문제를 너가 풀 수 있다고.


 나는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성공경험을 늘려갔다. ‘어려워 보이는 문제도 막상 부딪혀보니 어렵지 않구나?’ 하는 경험을 쌓아갔다. 풀 수 있다고 생각하고 도전하게 되었다. 아영이 말이 틀리고, 현서가 실수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둠활동에서도 내 의견을 당당하게 주장했다. 어렵고 싫기만 했던 수학이 점점 좋아졌다.




 늦기 전에 고민해야한다. 

학원에서 미리 배운 친구들로 인해 우리 아이의 자존감이 떨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친구들이 우리 아이를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이가 스스로를 공부 못하는 아이로 낙인 찍고 있지는 않은지.


 떨어진 자신감은

친구들로부터 잃은 신뢰는

스스로 찍어버린 낙인은

쉽게 회복하기 어렵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당장 내일 볼 단원 평가 점수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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