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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May 19. 2024

8할은 바람이 키운다

이 보 전진을 위한 반 보 후퇴

 8할은 바람이 키운다는 말이 있다. 아이를 키우게 하는 요소들 중 바람이 8할이나 차지한다는 말. 그 말은 아이 스스로 크는 힘이 있다는 말과 뜻이 같다. 당신의 자녀도 그럴 것이다. 당신의 자녀에게도 스스로 크는 힘이 있다. 부모가 일일이 알려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배우는 것들이 있다.  






 학교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여러 부모 유형을 접할 수 있다. 주로 아이의 입을 통해서 듣는 것들이라 주관과 과장이 버무려져 있는 것을 감안하여 들어야 할 테지만. 나는 여러 유형 중 극단적인 두 유형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H의 이야기이다. H는 10살이었지만 중학교 수학을 푸는 아이였다. 똑똑했고, 말을 잘했고, 공부도 잘했다. 아직까지 선명히 기억나는 것은 새하얀 H의 피부와 그와는 너무 대조적으로 거뭇했던 다크서클이다. H의 엄마는 하루 일과를 10분 단위로 촘촘히 계획하여 H의 가방에 넣어두는 사람이었다. 각종 학원들로 빼곡한 H의 시간표는 어른인 내가 봐도 입이 쩍 벌어졌다. H는 철저히 그대로만 행동해야 했다. 친구들이 오늘 학교 끝나고 빵꾸똥꾸(문구점)에 가자고 해도 H는 학원에 가야 한다며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나는 그런 H가 "너넨 이런 문제 못 풀지?"라는 말을 하며 친구들과 멀어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H는 "우리 엄마는 고등학생 때 전교 1등이었대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 부모를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러면서도 H는 부모를 무서워했다. 이따금 말썽을 피우는 H를 다루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엄마한테 전화해도 돼?"였다. 그 말 한마디로 H는 행동교정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 (너무 안쓰러워서 이후에는 자제했다.) H는 거짓말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하는 아이였다. 불리한 일, 엄마에게 혼날 것 같은 일이 생기면 목격자가 있든 없든 "자기는 그런 적 없다."며 박박 우기는 아이였다. H의 거짓말이 탄로 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해결하는 동안 나는 계속 의문이 들었다. H는 잘 크고 있는 걸까.

 

 두 번째는 J의 이야기이다. J는 13살이었고,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해서 엄마랑 둘이서 살고 있다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남자아이였다. J는 "우리 엄마는 천사예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J의 친구들도 "J 엄마는 천사예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 J에게 "엄마가 어떻게 해주시길래 천사야?"라고 물어보면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줘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학원 안 가고 싶다고 하면 가지 말라고 해요, 안 되는 게 없어요."라고 했다. 


 J는 건강하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아이였다. 학원은 합기도만 다닌다던 J는 1년 내내 얼굴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방과 후에는 축구하다가 목말라서 왔다며 "선생님, 간식 주세요." 하는 아이였다. 이따금 잘못을 해서 혼날 때면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아이였다. 그 흔한 초등학생의 변명도 없었다. J에게 "엄마한테 전화해도 돼?"는 통할 리가 없는 말이었다. J는 친구들 사이에서 욕을 절대 안 하는 아이로 소문이 나있었다. 그런데도 욕하는 친구, 여자 친구 가리지 않고 인기가 많았다. J는 수학 학원을 다니면 좋겠다는 나의 조언을 듣고 2학기부터 학원에 다녔다. 1학기엔 교과보충을 해야 할 정도로 수학을 못했던 J는 졸업할 때쯤엔 수학익힘책을 2등으로 풀어내는 아이가 되었다. J는 수학학원을, 엄마를, 선생님과 친구들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나중에 아들을 낳으면 J처럼 키우리라 생각했다.


 H와 J의 이야기는 극단적이다. 모든 현실에 일반화할 순 없다. 아이가 하는 말을 전부 믿어서도 안 되고, 학교에서 보여주는 일부의 모습만 보고 전체를 미루어 짐작해서도 안 된다. 다만 생각해 볼 순 있다. 당신과 자녀는 어느 쪽에 가까운가? 당신의 자녀는 당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다음은 내 이야기이다. 내 엄마는 공부 잔소리를 단 한 번도 하신 적이 없다. 반대로 “공부 그만하고 빨리 자라.”는 말을 많이 하셨다. 하도 자라고 해서 어떤 날은 엄마에게 들킬까 마음 졸이며 화장실에서 손전등을 켜놓고 공부하기도 했다. 


 내 엄마는 단 한 번도 성적을 물어보신 적이 없다. 물어보질 않으니 안달 나는 쪽은 오히려 나였다. 시험이 끝나면 곧장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수학은 다 맞았고, 국어는 2등급 나올지도 모르겠어. 어떡해?" 앓는 소리를 해도 내 엄마는 "고생했다."라고만 했다. 칭찬 한 마디, 조언 한 마디 없었다.


 돌이켜보면 내 엄마는 나를 다루는 방법을 아셨던 것 같다. 만약 엄마가 "내일 시험이니까 밤새 공부해."라고 하셨다면 내가 화장실에 몰래 숨어들 정도로 열심히 했을까? 만약 엄마가 "국어 좀 열심히 하지." 라며 나를 혼내셨다면, 성적을 곧이곧대로 말했을까? 나는 엄마가 '하라.'는 말을 안 했기에 더 열심히 했고, 어떠한 잔소리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곧이곧대로 털어놓았다.






 어떤 부모는 자녀와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다. '밀착'과 '집착'의 경계가 헷갈릴 정도이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잘 컸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아이와 밀착하게 만든다. 그러나 아이와 너무 가까이 붙는 순간. 아이와 멀어질 수 있다. 


 반 보 정도는 후퇴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보 전진을 위한 반 보 후퇴랄까. 반 보만큼의 여유는 자녀와의 관계를 좋아지게 한다. 내 아이를 건강하게 하고, 스스로 하고 싶게 한다. 8할은 바람이 키운다. 당신의 자녀에게는 스스로 크는 힘이 있다. 그러니 여유를 가지자. 아이는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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