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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Jun 23. 2024

우선순위를 잊어선 안 된다.

공부보다, 학원보다, 성적보다, 다른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사를 읽었다. 과거 어머니를 존속살해했던 한 남성의 인터뷰였다. 그는 공부를 강요하는 부모님으로부터 각종 체벌과 정서적 학대를 받았고, 이를 견디다 못해 자신의 엄마를 살해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가혹한 학대의 증거를 확인한 법원은 이례적으로 처벌의 수위를 낮추었고 현재 그는 결혼하여 슬하에 두 자녀를 두었다. 당시를 회상하는 인터뷰에서 그는 '어머니는 당신의 꿈을 자신에게 투영시켰던 것 같다.'라고, '지금이었다면 어머니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텐데 그땐 너무 어렸다.'라고 말했다. 


 위의 기사처럼 심각하지는 않더라도, 세부 내용만 다른 사실상 같은 이야기는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나의 오래된 친구 Y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Y는 초등학생 때까지 수재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다. Y의 엄마는 그럼에도 Y에게 공부를 강요했고, 천성적으로 반항을 못하는 성격인 Y에게는 틱 장애와 비염이 꼬리표처럼 달라붙어있었다. 갖은 어머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Y의 성적은 계속 떨어졌고, 급기야는 성적표를 위조하기에 이르렀다. 한참을 1등급인 줄 알고 지냈던 Y의 어머니는 입시상담을 위해 방문한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을 통해 사실은 1등급이 아닌 5등급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틱 증상은 Y의 유년 시절을 짐작케 하기에 충분했다. "안에서 곪다, 곪다 틱으로 발현된 것이 아닐까?" 말하며 자조적으로 웃어 보이는 Y에게 어떤 위로를 건넬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에는 수없이 많은 Y가 있다. 착하기만 했던 아이가 사춘기가 오고나서부터 부모와 어긋난 이야기. 과거엔 공부를 곧잘 하던 아이가 친구를 잘못 만나 공부를 손에서 완전히 놓아버렸다는 이야기. 등등등. 한 다리만 건너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우선순위가 뒤틀린 듯한, 우선순위를 잊은 듯한 학부모를 쉽게 볼 수 있다. 아직 초등학생인데도 말이다. 아이의 공부를 위해 당장의 잠을 못 자게 하는 학부모. 학원 숙제를 위해 마땅히 쌓아야 할 추억을 포기하게 하는 학부모. 새로 다닐 학원을 위해 친구들과 노는 시간을 가장 먼저 줄여버리는 학부모.


 일련의 사건들을 보고 들으며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왜 그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할까.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 속, 당장 눈앞에 쏟아진 것들을 헤쳐나가다 보면 무엇이 가장 중요한 지를 놓치곤 한다. 하지만 놓쳐서는 안 된다. 우선순위를 잊어선 안 된다. 공부보다, 학원보다, 성적보다, 다른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잘 알고 있다시피- 자녀의 '건강'이다. 나머지는 그다음이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 적절한 수면 시간을 지키는 것. 건강한 음식을 먹고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는 것. 운동 시간을 확보해 두는 것. 신체의 건강함 지키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13살임에도 눈 밑에 다크서클이 심하게 자리 잡은 아이들이 있다. 밤새 뭘 하고 왔는지, 그 좋아하는 체육수업을 해도 졸려서 참여를 거부하는 아이들이 있다. 심한 영양 불균형으로 초고도 비만이거나 저체중인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집중할 수 있을까?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까? 집중하려면, 공부를 잘하려면, 기능적인 측면에서 신체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에 못지않게 정신적 건강함을 지키는 것 역시 중요하다. 부모로부터 받는 사랑과 안정감. 친구들과의 정서적인 교류. 무조건적인 공감과 지지. 성취감. 자아 정체성 형성 등. 건전한 사고방식을 갖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억압받았던 아이들. 반항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엄격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유독 사춘기를 힘들게 보내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말하면, 자신의 의사를 풍부하게 표현하고, 고집 있어 보일지라도 반항을 하고, 자유분방한 유년시절을 보낸 아이들은 내면에 축적된 부정적 감정이 상대적으로 적다. 각종 잡념과 불건전한 생각들로 머릿속이 어지러운 아이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까? 눈앞에 것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아무 걱정 없는, 정돈되어 있는 뇌가 필요하다.








 아이들은 숨 가쁘게 성장한다. 유년시절은 부모의 예상보다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 짧은 틈새에도 평생에 걸쳐 등속운동을 하게 될 '습관'을 만들어낸다. 평생에 걸쳐 기억하게 될 '추억'을 쌓아간다. 유년시절은 그만큼 중요하다. 그러므로 감히 제안한다.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는 만큼만 공부하면 어떨까. 학원 대신, 그 시기에만 쌓을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주면 어떨까.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고, 좋아하는 것을 찾고, 질 좋은 음식을 먹고, 부모와의 관계를 공고히 다질 수 있는 시간을 주면 어떨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느냐가 평생의 건강과 추억과 습관을 좌우한다.


 우선순위를 잊어선 안 된다. 공부보다, 학원보다, 성적보다, 다른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체적 건강함과 정신적 건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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