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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Jun 16. 2024

자녀 교육을 위해 딱 한 사람만 남겨둘 수 있다면

형제, 자매라고 답하고 싶다.

 자녀 교육을 위해 이세상에 사람만 남겨둘 수 있다면, 당신은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당신 자신? 교사? 학원 강사? 과외 선생님? 


 나는 이 물음에 형제, 자매라고 답하고 싶다. 


 자녀교육을 위해 형제, 자매를 활용해보면 어떨까?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고 배우게 하면 어떨까? 이는 두 자녀 모두에게 효과적인 학습방법이 될 수 있는데, 그 얘기를 자세히 해보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편의를 위해 첫째 아이를 1번, 둘째 아이를 2번이라고 지칭하겠다. 


 1번은 2번을 가르치며 학습의 기회를 획득한다. <학습 피라미드>따르면 '직접 가르치기'는 여타의 모든 학습 방법과 비교해서 학습효과가 가장 높다. 아래의 표를 보면 Teaching Others(다른 사람을 가르치기)는 학습한 내용이 하루가 지난 후에도 90%라는 높은 비율로 아이들의 머릿 속에 남는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1번은 하브루타에서 의도하는 효과도 볼 수 있다. 하브루타는 유대인의 전통적인 학습 방식으로 공부 효과가 매우 크다고 주목받아왔는데, 학생들끼리 서로  소리로 얘기하며 토의토론함으로써 학습하는 방식이다. 정통 하브루타는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주목하지만, 형제자매 간에는 서열이 존재한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큰 소리로 얘기하며 설명'하는 것이 그것을 행하는 주체에게 학습 효과가 있음에 집중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1번이 2번에게 수학문제를 설명해주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1번은 2번에게 설명하기 위해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을 한 번 더 점검하고 보다 알아듣기 쉬운 설명을 고안한다. 그것을 큰 목소리로 상대의 반응에 따라 보충하거나 심화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1번으로 하여금 보다 깊이 있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기효능감과 우애관계라는 정서적인 측면에서도 서로 가르치는 행위는 도움이 된다. 어린 아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배우는 데 쓴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 대해 설명하고, 누군가가 그걸 귀기울여 듣고 있는 것 자체가 매우 생소한 경험이다. 따라서 2번을 가르치는 경험은 1번의 자신감과 자기효능감을 올려주는 긍정적인 자극이 될 수 있다. 또한, 아이들끼리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경험은 유대감을 쌓고, 관계가 돈독해지도록 유도하는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이번에는 2번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동생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텐데, 동생들은 (어린 시기에 한해) 1번을 특별한 이유없이, 막연히 동경하고 따르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 이 습성이 2번에게 학습 효과를 준다고 말하는 이론이 있다. 이는 앞선 글에서도 제시한 적이 있는 반두라의 모델링 이론이다. 모델링이란 타인을 롤 모델(role model)로 선정하고, 그의 행동과 경험을 관찰한 것을 자신의 행동에 적용하여 학습이 이루어진다는 '간접학습' 이론이다. 나는 이 이론에서 특히 눈길이 가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친근한 인물일 수록 모델링이 더 잘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나와 유사하거나 심리적으로 가까운 모델일 수록 모델링이 잘 된다. 따라서 2번이 1번을 보고 배운다면, 1번이 친밀한 모델이라는 점에서, 2번에게 큰 학습효과를 줄 것이다.

모델링 이론을 만든 반두라

 더불어 1번은 2번이 어려워하는 것을 가장 가까운 시기에 학습한 사람이다. 그만큼 1번이 주는 모든 영향은 생생하다. 같은 내용일지라도 부모와는 다른 시야로, 아이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방법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끼리만 통하는 무언가는 어쩌면 설명의 정확성보다 큰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15살 무렵 학교에서 문장완성형 검사를 한 적이 있다. 문장완성형 검사는 여러 가지 문장에 뚫려있는 빈칸을 채움으로써 나의 마음 지도를 그려보는 검사이다. 당시 검사지에 "나의 정신적 지주는 ________다."가 있었다. 이에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빈칸에 이준희라고 적었다. 이준희는 우리 언니 이름이다. 나는 그만큼 언니를 동경했고, 믿었고, 잘 따랐다.


 언니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수학, 공부 습관, 친구 관계, 운동 방법 등등. 언니는 모르는 것이 없었고 다소 귀찮은 듯한 말투였지만 어쨌든 늘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주었다. 고작 3살 터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얻을 수 없거나, 얻고 싶지 않은 것들을 언니를 통해 해결했다. 오죽하면 수능 시험을 보러 가기 하루 전, 부풀대로 부풀어오른 불안이라는 감정을 부모님이 아닌 언니를 통해 해소하는 것을 선택했을까. 당시 불안함을 쏟아내는 내게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수능 볼 때 그랬어. 그럴 수 있어. 네 마음이 뭔지 아는데, 떨지마. 떨면 될 것도 안 돼.”      


 언니가 해준 말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할 정도로 내게 임팩트가 있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지금 느끼는 감정은 부모님이 해결해주실 수 없겠구나 하고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나도 나지만, 자신을 온전히 믿고 온전히 의지하는 동생의 존재가 언니에게도 꽤나 큰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형제, 자매의 '서로 가르치기'가 일회성 시도로 끝나지 않기 위해 부모가 신경써야 할 부분이 있다. 


 첫째, 1번에 대한 보상이다. 1번이 올바른 행동을 했을 때, 부모는 적절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보상은 칭찬이나 물건, 음식 등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스키너의 조작적 조건화 즉, "올바른 행동 -> 보상"이라는 생각을 아이에게 심어줌으로써, 다음에 또 그 행동을 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보상은 2번에게도 대리강화 효과가 있다. 대리강화(vicarious reinforcement)는 쉽게 말해 1번이 올바른 행동으로 보상을 받으면, 2번이 그 행동을 모델링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정리해보면, 1번의 올바른 행동에 대한 보상이 1번과 2번 모두에게 좋은 강화가 된다.


 둘째, 2번에 대한 보상이다. 만약 2번이 1번을 잘 보고 따라했다면, 그러니까 모델링에 성공했다면 2번에게 칭찬이나 선물 등을 통해 확실한 보상을 해야한다. 반두라는 모델링한 행동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모델링은 소거(extinction)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자. 1번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2번에게 영어 단어를 외우자고 한다. (적어도 한 번쯤은 아이 스스로 하는 날도 있지 않은가!) 부모는 발견 즉시, 2번이 보는 앞에서 1번을 칭찬한다. 1번은 '영어 단어를 외우면 칭찬 받는구나' 혹은 '2번을 가르쳐주면 칭찬 받는구나'를 인지하고 다음에 또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즉 조작적 조건화가 일어난다. 2번은 1번이 칭찬받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영어단어를 외우면 1번처럼 칭찬 받을 수 있구나'를 인지하고 1번을 따라 영어 단어를 외운다. 부모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2번도 똑같이 칭찬 한다. 그럼 2번은 '역시 1번을 따라하면 칭찬을 받는구나, 다음에 또 해야지.'를 인지하게 된다. 

 부모는 자녀 모두에게 똑같이 칭찬을 통해 보상을 했다. 하지만 형은 조작적 조건화, 동생은 모델링을 통해 각각 영어 단어를 외우는 행동을 한 번 더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셋째, 다툼의 가능성을 염두해두어야 한다. 이는 어쩌면 가장 크리티컬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형제 자매는 가까운 사이이기에, 툭하면 다툼이 일어난다. 특히 사춘기를 지나고 있다면 둘 사이의 괜한 접촉은 자제시키는 것이 좋을 수 있다. 만약 서로 가르치는 방법을 시도하기로 결정했다면 1번에게는 2번을 무시하는 태도를 경계시키고, 2번에게는 1번에 대한 존경과 협조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형제, 자매는 필연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직접 가르쳐주며 영향을 주고 받기도 하고, 모델링을 통해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기도 한다. 아이들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유년기. 피할 수 없다면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받도록 부모가 이끌어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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