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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Jun 30. 2024

외모만 닮은 것이 아니다.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의 자녀도 그럴 수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말, 문과를 갈지 이과를 갈지 고민하던 시기였다. 당시 나는 P선생님을 꽤 많이 존경했고, 꽤 많이 따랐다. 아래는 P선생님과 나누었던 대화다.  


"쌤, 저 문과 가요? 이과 가요?"

"그걸 왜 나한테 묻냐?"

"아 쌤 빨리요."

"부모님께서 문과셨는지 이과셨는지 여쭤봐."


나는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질문했다.


"엄마는 문과고 아빠는 이과인데 어떡해요?"

"그럼 부모님 중에 너랑 더 닮은 쪽이 누구시냐?"

"얼굴이요?"

"개뿔이 얼굴. 성격!"

"아, 그럼 엄마요!"

"그럼 문과에 더 비중을 두고 고민해 봐."

"알겠어요. 그럼 문과!"


 그때는 그게 뭐가 중요한 건가 싶었다. P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니까 잠자코 그런가 보다 했지,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인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그때 P선생님께서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이해가 되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관찰하다 보면 유독 하나에 뛰어난 아이가 있다. 미술, 음악, 체육, 수학 등등.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부모님 직업을 묻지 않고는 못 배기는 안 좋은 습관이 있는데, 그 대답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미술을 잘하거나 패션, 꾸미기 등에 관심이 많은 아이에게 "부모님이 혹시 미술 쪽이니?"라고 조심스럽게 물으면 십중팔구는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나머지 십중 둘하나는 "부모님은 아니고, 삼촌이 디자이너예요!"식의 답변이 돌아온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반 13살 쏭은 노래를 웬만한 가수만큼 잘한다. 변성기가 오지 않은 청아한 음색덕에 음악시간마다 귀가 호강을 할 정도이다. 어느 날 참다못해 쏭에게 "혹시 부모님이..?"하고 물었고 역시나 "아빠가 합창단이세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겉으로는 "어머, 정말?" 하며 짐짓 놀란 척 하지만 속으로는 '그럼 그렇지.' 생각을 해버린다. 늘 이런 식이기 때문이다. 피는 못 속인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 이는 굳이 통제변인이니 종속변인이니 하는 실험적 증명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우리가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는 객관적-혹은 그것에 가까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공부의 영역에서만큼은 쉽게 예외를 둔다. 내가 못했더라도 자녀에게는 기대를 걸어버린다. 

공부도 다르지 않다. 합창단원인 아버지 밑에서 청아한 목소리의 쏭이 태어났듯, 공부를 잘하는 부모 밑에서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태어난다. 이는 <노력의 배신(부제: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잘할 수 있을까?)> 책에서도 자세히 나와있는데 관심 있는 사람은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인 김영훈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노력보다는 재능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 말을 "공부도 재능이다." 혹은 "공부도 유전이다."로 치환해버리고 싶다.

노력의 배신 – Daum 검색


그러므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나는 공부를 잘했나? 

나는 공부를 좋아했나?

나는 한 만큼 결과가 나왔던가?


당신의 배우자에게도 물어보자.

공부를 잘하고, 좋아하고,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왔었는지.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의 자녀도 그럴 있다. 당신과 당신의 자녀는 외모만 닮은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길을 찾도록 돕고 싶다면 당신과 당신의 배우자가 나침반이 되어줄 수 있다. 내가 잘하는 것을 아이가 잘할 확률이 높다. 배우자가 못 하는 것을 아이가 못 할 확률이 높다. 내가 잘하는 것을 아이가 좋아한다면 "옳다구나!"하고 그 방향으로 키워주면 된다. 마찬가지로 배우자가 못 하는 것을 아이가 싫어한다면,  더 이상 강요해서는 안 된다. 노력은 가끔 우리를 배신한다는 슬픈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공부를 싫어했다고 마냥 손 놓고 있으라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무엇으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아이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어야 하는 책임이 있지 않은가. 그리하여 나는 '공부 방법'있어서 부모를 '나침반' 삼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 아버지필기를 잘하셨다. 책꽂이에 가득 꽂혀있는 20권 가까이 되는 공책에는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아버지가 하셨던 필기들로 빼곡하다. 아버지는 쓰면서 공부하는 것을 선호했던 것이다이는 나의 공부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나도 쓰면서 공부하는 방식이 잘 맞는다. 아마 자식도 그럴 확률이 높지 않을까? 만약 미래의 내 딸이 공부로 고생한다면, 슬며시 공책과 펜을 건넬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나는 청각적 정보에 강하다. 귀로 많이 듣다 보면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입에서 술술 아웃풋이 된다. 나는 이러한 나의 특성을 알고 난 뒤로, 영어 단어를 외울 때마다 녹음기를 사용했다. 단어와 뜻을 녹음하고 수시로 들으면 다른 어떤 방식보다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았다. 모르긴 몰라도 내 자녀도 비슷하지 않을까? 만약 내 피를 물려받았다면, 무작정 외우라고 하는 것보다 영어챈트나 구구단송처럼 음악을 활용하면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당신은 무엇에 강한가? 어떤 공부방식이 당신에게 잘 먹혔는가? 시각화? 말하기? 무엇이든 좋다. 그것이 아이에게 잘 맞는 방법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러니 공부로 골머리를 썩고 있을 아이에게 조심스레 제안해 보면 어떨까?





 



 고등학교 2학년의 어진이는 엄마를 닮았고, 결국 문과를 선택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수학이 재미있었고, 수학을 잘했다. 고전 문학과 화자의 심리상태는 암호 해독과 같다고 느꼈고, 그에 반해 과학적 증명과 수학 문제 풀이는 쉽고 명쾌했다. 

 문과에 대한 회의감이 가득했던 터라 교육대학교 심화과정을 선택하는 기로에서는 결국 수학교육과로 진학했다. '고등학생 때는 문과인 엄마를 닮았다고 착각했지만, 실은 이과인 아빠를 닮았구나.'는 생각에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여름날, 엄마와 집 근처 둘레길을 산책하며 나눈 대화다.

"엄마, 초등학교 내용인데도 난 수학, 과학이 재밌다? 아무래도 난 고등학생 때 이과를 갔어야 했나 봐."


그러자 엄마가 앞만 보며 별 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어, 엄마도 그랬는데. 엄마도 수학, 과학이 좋더라. 아무래도 어릴 때 이과를 갔어야 했던 것 같아." 


나는 고개를 홱 돌리고 엄마를 향해 소리를 빽 질렀다.

"그걸 왜 이제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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