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어진 Jun 09. 2024

칭찬과 피그말리온 효과

칭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대부분의 말은 한 귀로 흘려보냈다. 그러나 어떤 말은 영혼에 새겨져 살아가는 순간순간 떠오르기도 한다. 20년 전에 들었지만, 향후 20년은 더 머릿속에 남아 나를 지켜줄 말이 있다.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지탱해 줄 말이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공부와 관련된 말, 공부로 지치고 괴로웠던 순간을 버티게 해 주었던 말. 공부 자존감을 채워주었던 말들이 있다.


 그 말들은 내게 피그말리온 효과를 일으켰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긍정 심리학의 한 부류로, 긍정적인 기대나 관심이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효과를 말한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나이를 가리지 않고 작용하지만, 특히 유년 시절에 효과가 좋은 것 같다. 지금부터 내가 유년시절에 들었던 말과 그것이 내게 어떤 심리로 작용했는지 소개한다.






1. "어진이는 필기를 잘하는구나?"

 과학시간이었다. 12살 어진이는 실험관찰에 쌍떡잎식물과 외떡잎식물을 필기하고 있었다. 주황색 펜으로.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선생님께서 칠판에 적은 것을 그대로 베껴 적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칭찬할 만큼 대단한 순간은 아니었던 것이다. 당시 담임이셨던 S선생님은 평소처럼 순회지도를 하시며 지나가듯 가볍게 말했다. "어진이는 필기를 잘하는구나?" 

 나는 집에 가자마자 엄마를 앉혀놓고 미주알고주알 말했다. 무슨 수업 시간에, 무얼 하고 있었고, 선생님께서 어떻게 저떻게 무어라 하셨는지. 20년 가까이 된 일이지만, 그날 필기한 내용과 펜의 색깔까지 선명히 기억한다. 어쩌면 그 한마디가 나를 '필기를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 않았을까? (과장 조금 보태서) 노트테이킹에 몰두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2. "OO 중 시험 어려웠는데, 84점이면 잘한 거 아닌가요?"

 수학 과외만 하다가 처음으로 학원에 등록한 날이었다. 학원장 선생님께서 내게 수학 실력을 여쭤보셨다. 나는 자신 있고, 당당하게, 솔직한 느낌 그대로 털어놓았다. "엄청 못해요." 그러자 원장선생님께서 웃으며 되물었다. "이번 중간고사 몇 점 받았어요?" 역시나 솔직한 느낌 그대로 답했다. "84점 받았어요. 시험이 너무 어려웠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OO 중 시험 어려웠는데, 84점이면 잘한 거 아닌가요?"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네? 제가요?" 하지만 잠시. 찰나의 순간 시공간이 아득해져 옴을 느꼈다. 선생님 말씀이 잠시 동안 들리지 않았다. 시선을 뒤편의 창문으로 보내고 메타인지 비슷한 것을 했다. '왜 못한다고만 생각했지? 못했던 건 과거의 어진이인데. 지금의 어진이는 그렇게 부족하지 않은데. 우리 학교에서 84점 받은 거면 잘한 건데.' 하고 말이다. 지금은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원장선생님의 의아한 한 마디. 그 한 마디가 스스로 쌓아 올린 선입견의 장벽을 깨 주었다. 그리고 깨진 벽돌을 하나하나 이어 붙여 수학 자신감이라는 초석을 쌓을 수 있게 해주었다.


3. "쟤 원래 독하잖아."

 고2 체육시간이었다. 학교에서 체력 측정을 한다며 왕복 오래 달리기를 시켰다. 여학생은 55회 이상을 왕복해야 1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걸 알게 된 날부터 저녁마다 뛰어서 하교했다. 각종 문제집과 교과서가 한가득 담긴 백팩을 메고서. 그러나 결과는 아쉽게도 2등급이었다. 49회쯤 뛰었을까. "얘 이러다 쓰러진다."며 체육선생님께서 달리기를 중지시켰기 때문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선생님께서는 좀비가 뛰는 줄 아셨단다.) 아무튼 결과는 2등급이었으나, 그게 친구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졌다. 웬 비쩍 마른 문과 여자애가 왕복 달리기를 체육선생님이 말리실 때까지 뛰었으니 그게 나름 자극적인 콘텐츠였나 보다. 등 뒤에서 내 이야기가 오가길래 모르는 척 이어폰을 끼려는 찰나. 누군지 모를 남학우의 목소리가 귀에 콕 박혔다. "쟤 원래 독하잖아." 

 그 말은 귀에만 박히지 않고 가슴에 그리고 머리에까지 콕 박히었다. 그날 이후로 왠지 모르게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좀 독한가? 싶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난 좀 독한 사람인가 보다.'로 이어졌다. 잠이 쏟아지는 새벽마다 '난 독한 사람이니까 한 페이지만 더 풀자.'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게 되었다. 

  





 위의 말들은 모두 공부에 대한 긍정적인 심리를 자극했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그것에 더해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부모나 가족의 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완벽한 타인의 말이라는 것이다. 평생에 걸쳐 두고두고 나를 지탱해 줄 문장은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는 완벽한 타인의 말일 수도 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만큼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때에 따라 부모는 제외된다. 너무 밀접해서, 너무 완벽한 내 바운더리 속 사람이라서 오히려 영향을 끼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심지어 몇 번의 데이터가 쌓임으로써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이런 상황이다. 부모가 칭찬을 하더라도 '엄마가 열심히 하라고 일부러 저렇게 말씀하신다.'라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태.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면, 부모의 말은 좀처럼 영향력을 갖추기 힘들다.


 가면증후군에 갇힌 아이들도 있다. 가면증후군이란 자신의 성공을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이 아닌 '운의 탓'으로 돌리는 심리이다. 높은 성취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과대평가된 것으로 치부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것이 주요 특징이다. 이런 아이들은 칭찬을 받아도 불안하다. 인정이 못 미덥다. 

 하지만 여러 사람으로부터 듣는다면?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듣는다면? '운이 좋아서 벌어진 일이 어쩌면 내가 잘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적어도 그럴 확률은 높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첫째, 칭찬을 한다. 자주, 반복적으로 한다. 아이가 스스로를 그렇게 인식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기대 심리를 자극할 수 있도록. 칭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둘째, 학부모 상담을 빠짐없이 신청한다. 학교든 학원이든 상관없다. 그리고 교사에게 요청하는 것이다. 콕 집어서 '우리 아이 좀 칭찬해 주세요.' 라며 약한 소리 할 필요 없다. "우리 아이는 칭찬에 약해요." 한 마디면 된다. 이는 내가 학기 초에 받은 가정환경조사서에 적혀 있던 말인데, 이것만큼 교사 입장에서 고마운 정보도 없다. 그걸 읽거나 들은 교사는 특별히 기억해 두었다가 그 아이에게 한 마디라도 더 칭찬하게 된다. 그러니 기꺼이 요청하자. 타인의 칭찬 한 마디가 부모의 열 마디보다 더 강력할 수도 있다.


 어떠한 말들이 두고두고 남아 자녀를 지탱해 주길 바란다면. 공부로 인해 무너져 내리지 않길 바란다면. 지치고 괴로운 순간을 버틸 수 있길 바란다면. 피그말리온 효과를 생각하며 다정한 칭찬 한 마디 건네어보는 것은 어떨까? 아이에게 강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교사에게 부탁해 보는 건 어떨까?

이전 06화 계획과 시행착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