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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파랑 Feb 26. 2024

마음이 시끄러울 땐 웨이트 운동

웨이트 운동에 대한 글을 꼭 쓰고 싶었다. 반복적이고 지루한 운동이라고 생각했던 웨이트가 몇 달째 나의 삶을 단단하게 지탱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삶에 기쁨을 주는 차원을 넘어 운동을 하지 않으면 삶이 무너질까 두려워 어떻게든 이 악물고 운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실 한 번도 운동을 가는 길이 즐거웠던 적은 없다. 가야 하니까 갔고 한참 운동을 하고 나면 그래도 해냈다는 성취감이 몰려오는 정도였다.)


스무 살 이후 운동을 쉰 적이 거의 없다. 물론 처음엔 누구나 그렇듯 대학을 갔으니 살을 빼고 싶다는 이유였다. 그때부터 집 아래 헬스장에 가 유산소 운동을 했으며 그것이 질릴 때쯤엔 요가, 필라테스, 발레 등 다양한 운동을 섞어했다. 그리고 취업 준비생 때 크로스핏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마음이 울적할 때 격렬한 운동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매번 신촌에 있는 크로스핏 센터에 갔고 나중에는 같은 시간대 사람들이랑 친해져 1시간 운동 타임이 끝나고 나서도 함께 보강 운동을 하곤 했다. 처음에는 체력이 부족해 주어진 루틴을 완벽히 수행하지도 못했고 하고 나면 쓰러져 있기 일쑤였지만 1년쯤 하고 나니 운동 능력이 향상돼 마지막엔 맨 몸으로 물구나무서기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안양천부터 반포한강공원까지 자전거를 타던 길도 가뿐했다. 오르막길을 힘 들이지 않고 오르던 그때의 가벼운 감각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두 시간씩 운동을 하고 씻고 나와 신촌 스타벅스에 가서 친구들과 취업 준비를 같이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마감이 있는 일을 하면서부턴 사무실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야 할 시간이 늘어났다. 취재와 촬영, 마감 등으로 규칙적인 출퇴근을 잊어갈 때쯤 이대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집에 못 갈 거면 운동이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출근 전 이른 아침이나 점심, 저녁 시간 등 짬나는 시간에 운동을 했다. 출근이 여유 있는 편이었다 보니 출근 전에 필라테스 수업을 듣거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들어질 즈음엔 회사 근처에서 복싱과 플라잉 요가를 했다. 복싱은 스트레스 풀기에 적당했고 저녁 시간에 한바탕 샌드백을 때리고 나면 내면의 분노가 모두 가라앉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원고 쓰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플라잉 요가는 새로운 동작을 배워서 할 수 있다는 데서 성취감과 보람을 느꼈고 처음에는 주리를 트는 것처럼 사타구니에 불이 나는 느낌이 들었지만 동작이 익숙해질수록 고통스러운 감각이 무뎌지는 데 쾌감을 느꼈다. 


가만히 나의 운동 이력을 생각해 보면 운동을 해야만 스트레스가 풀리고 일상이 좀 더 나아진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몸의 탄력성. 특정 나이대를 지나면서는 다이어트에 대한 욕망은 거의 사라졌지만 운동을 하고 안 하고에 따라 몸의 라인이 달라지는 게 바로 체감이 됐다. 살이 흐물흐물 늘어진다는 생각이 들거나 몸이 조금이라도 무거워지면 강박적으로 운동을 해야만 했다. 때로는 운동을 해야만 하는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그것이 삶을 향한 유일한 동아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파리로 와서 처음 달리기를 하던 시절도 그랬다. 그때는 하얀 입김이 펄펄 나는 겨울에도 얇은 맨투맨 한 장을 입고 5km씩 뛰었다. 그렇게 하얀 숨을 내뱉으며 내면의 나와 마주하다 보면 익숙한 세계에 대한 그리움과 낯선 곳에 혼자 남겨진 사람의 외로움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가끔은 뛰면서 울었고 한참 눈물을 흩뿌리고 나면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파리에서 5년 간 살면서 필라테스와 클라이밍, 복싱, 테니스 그리고 헬스를 해봤다. 뭐 하나가 지겨워지면 다른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는 식이었다. 늘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고 한 가지 운동이 물릴 때쯤에 다른 운동을 다니길 반복했다. 그러다 작년에 헬스장을 등록할 때 헬스장에서 새롭게 퍼스널 트레이닝을 론칭한다 하길래 저렴한 가격에 두 번 체험 수업을 해봤다. 그전까지 PT 경험이 제로였고 또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PT를 많이 한다는 걸 알아서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느낀 것은 확실히 전문가가 자세를 봐주고 힘을 줘야 할 부위를 알려주니까 운동이 더 수월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작년 겨울, 한국에 한 달 방문했을 때 일주일에 세 번씩 총 10회 PT 수업을 받아봤고 그때의 경험이 나의 일상을 바꿔놓았다. 


좀 더 어렸을 때는 웨이트가 지루하고 권태로운 동작의 반복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15회 카운트, 3-4세트 반복. 20대의 넘치는 에너지와 끓어오르는 의욕을 감당하기에 웨이트는 너무 정적인 운동 같았다. 물론 무게를 늘려가면서 성취감과 도전의식을 고취할 순 있겠지만 무게를 아무리 올린다고 해도 기본적으로는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고 그걸 누가 알아줘? 같은 회의감. 그렇지만 나이가 먹고 다시 해보는 웨이트는 확실히 달랐다.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운동 동작 하나하나에 더욱 흥미를 느낀 것도 맞지만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반복적인 운동이 얼마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게 해 주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취업이나 앞으로의 진로 등의 고민으로 속을 썩일 때나 일이 잘 안 풀려 울적하고 속상한 마음이 들 때 스쾃이나 데드리프트 개수 같은 걸 세다 보면 쓸데없는 고민과 걱정을 하지 않게 됐다. 심지어는 운동이 끝나고 나면 오기 전에 어떤 것 때문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열기로 가득 찬 헬스장 안에서는 한 세트만 더 하면 죽을 것 같다는 마음으로 헉헉대면서 눈앞의 과제들을 해치워나가는 것만이 중요했으니까. 



인생이 너무 복잡하고 버겁다는 생각이 들 때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면서 머리를 비우는 일의 아름다움이란. 비록 하루 운동을 다녀오면 그다음 날 운동을 쉴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기쁨이자 보상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일주일에 세 번씩 운동하는 것은 일상의 중심을 잡아주기도 한다. 그러니 내 삶을 망가트리지 않기 위해, 존재 이유를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그리고 결국은 이렇게 흐리고 우울한 날씨에도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난 운동을 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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