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pain (au chocolat)
프랑스에도 유로 밀리언이라는 복권이 있다. 작년에 이 복권의 당첨자였던 커플을 인터뷰한 기사가 있었다. 복권에 당첨된 이후 가장 크게 바뀐 것을 묻는 질문에 아침마다 침대 위에서 크로와상을 우버이츠로 배달시켜 먹는 사치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라고 답하는 것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부러웠는지도.
프랑스는 빵의 나라다. 우리나라의 쌀밥처럼 주요 탄수화물 섭취제랄까? 레스토랑에 가도 늘 요리에 사이드로 바게트가 나오는 게 마치 한국 식당에서 나오는 공깃밥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식당에서 내놓는 바게트는 그날그날 근처 빵집에서 조달된다. 식사를 할 때 주위를 둘러보면 가끔 주방의 보조가 한 품 가득 쌓인 바게트를 가져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 바게트 회전율이 좋은 가게는 그만큼 손님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원하면 무한대로 제공되는 이 바게트는 유럽 다른 도시를 여행할 때가 되면 프랑스가 왜 빵으로 유명한지 새삼 생각하게 만드는 매개체다. 나는 평소에 바게트를 잘 사 먹는 편이 아니지만 그날그날 나온 바게트를 사는 건 프랑스 가정의 평범한 일상 중 하나다. 파리의 가장 유명한 클리셰 중 하나인 바게트를 장바구니에 꽂고 다니는 파리지엔은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닌,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상의 풍경이다. 보통 그날 사 간 바게트 빵은 그날 저녁에 먹고 폐기한다. 하루이틀만 지나면 그걸로 못을 박아도 될 정도로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작 1-2유로 정도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번 먹고 남은 걸 버린다고 해도 크게 아까울 것도 없다.
그 밖에 비아누아제리(viennoiserie)라고 불리는 빵들도 있다. 설탕과 달걀, 버터를 넣은 발효 반죽으로 만든 모든 종류의 제빵 제품을 통칭하는 말로, 우리가 흔히 아는 크루아상, 빵오쇼콜라, 브리오슈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따로 그러라는 법칙이 있는 건 아니지만 주로 아침 식사로 커피와 함께 이런 빵들을 먹는다. 아님 어린아이들일 경우에 프랑스에 흔히 있는 중간 간식 시간(오후 네다섯 시 전후)에 먹기도 한다. 나는 학교를 다닐 땐 무조건 카페테리아에서 아침에 크루아상이나 빵오쇼콜라에 커피를 샀고, 회사를 다닐 때는 출근길에 근처 빵집을 들렀으며 (출근할 때 빵 봉지를 들고 인사를 건네는 팀원을 흔히 본다) 주말에는 잠에서 덜 깬 상태로 대충 운동복을 걸쳐 입고 나와 근처 빵집에 간다. 이렇게 아침에 빵을 사는 일이 매일은 아니더라도 흔히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 중 하나가 됐다. 아침에 갓 나온 빵은 촉촉하고 부드럽고 맛있으며 에스프레소에 가까운 커피의 강한 맛을 융화해 완벽한 조합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또 아침에 커피 없이는 하루가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공복에 커피를 먹기는 부담스러울 때 버터 풍미가 가득한 빵과 함께 커피를 마시면 위장을 보호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비로소 아침에 먼저 일어나 빵집에서 같이 먹을 빵을 사 오는 파트너가 왜 완벽한 로맨틱 코미디의 클리셰가 됐는지 이해하게 됐다. 그건 정말 사랑이 눈에 보이는 행위야.
최근 한국에서 파리로 놀러 온 손님을 만난 일이 있었다. 빵을 비닐 포장이 아니라 봉투에 담아주는 것이 생소하다는 말을 듣고서야 그러고 보니 한국에 살 땐 나도 당연히 그랬는데!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개인 빵집이 아닌 프랜차이즈라면 더욱더. 항상 집 식탁에는 엄마가 사 온 가족들의 취향에 맞는 빵이 놓여 있었고 그것이 언제 산 건지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유통기한 내라는 가정 하에) 반대로 프랑스 살면서는 내일 먹을 빵을 산 일이 잘 없다. 우연히 유명한 빵집을 지나치게 되어 홀린 듯이 빵을 사고 그 다음날 먹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서 어떤 것이 낫다기 보단 평소에 크게 느끼지 못했던 일상의 사소한 차이들이 문화권마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는 게 흥미로웠다. 그것이 꼭 빵에 대해 한 번쯤은 말하고 싶었던 이유다. 이 글을 쓴 오늘도 아침에 차마 비가 온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젖은 채로 빵오쇼콜라 하나를 사 와서 먹었다. 그리고 그렇게 당을 채우고 나서야 하루가 시작되는 게 두렵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