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날을 하나 뽑으라면 단연 3월의 마지막 일요일, 서머타임이 시작되는 날이다. 원칙적으로는 새벽 1시 다음, 새벽 2시를 건너뛰고 새벽 3시가 되는 날이자 똑같이 오전 8시에 일어나도 오전 9시가 되어있는 날. 그래서 늦잠을 잤다고 생각하며 후다닥 깨지만 사실은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는 사실에 안심하게 되는 묘한 날이다. 다음 날 직장을 가기 위해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살짝 억울하지만 그럼에도 서머타임을 좋아하는 이유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찬란한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마치 한국의 입춘처럼 이 날이 지나면 해도 길어지고 기온도 올라간다. 유럽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계절의 시작. 서유럽처럼 해도 안 뜨고 축축하고 으슬으슬한 겨울과는 완벽히 대비되는 해가 쨍쨍하고 건조한 여름을 가진 나라에 살면 행복한 계절과 불행한 계절의 경계를 명확하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서머타임은 감히 말하자면 인생이 나아질 일만 남았다는 것을 알리는 상징적인 순간이다. 그러므로 서머타임이 끝나는 10월 말까지의 시간은 온전히 내 거야!!!!!!!!!!
오롯이 파리에서의 겨울을 지나 보면 해가 뜰 때 무조건 밖에 나가야 하는 파리지엔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냥 점심 한 끼를 먹더라도 굳이 양지바른 곳을 찾아 나가야 한다. 지난주가 그랬다. 웬일로 한 주 내내 해가 떴다. 그래서 점심 약속을 나갔다가도 돌아오는 길에 정처 없이 도시를 걷는다거나 날씨가 좋다는 이유로 (역시 같은 이유로 외출을 한) 친구를 도서관 앞마당에서 만난다거나 친구의 회사 근처에 가서 친구를 불러 내 같이 해를 맞으며 점심을 먹는 등 야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현저히 늘어났다. 파리를 낭만적으로 만드는 요소 중 하나는 야외에 마음껏 널브러질 수 있는 장소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정오에서 두 시 사이에는 점심 도시락을 들고 공원 벤치, 도서관의 테라스, 야외 계단, 광장의 분수대 등 이곳저곳에 자리해서 직장 동료나 친구와 수다를 떨며 밥을 먹거나 그냥 혼자 이어폰을 꽂고 밥을 먹는 파리지엔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 시간만큼은 현실로부터 멀어져 그냥 군중 속 한 명이 될 수 있는데 특히 파리처럼 관광객이 바글거리는 도시에 살면 그 두 시간 조차도 관광객들의 들뜬 목소리에 섞여 여행을 떠나 온 기분이 든다. 파리에 사는 건 늘 여행과 현실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다. 쏟아지는 관광객들에 치여 지칠 때도 분명 있지만 때로는 (여전히) 여행 온 기분으로 삶을 즐길 수 있다.
산책을 할 땐 항상 책을 가지고 나온다. 역시 이북보단 종이책이다. 가방에 대충 쑤셔 박고 나와 커피를 한 잔 마시러 들린 카페든, 볕이 잘 드는 벤치든 마음 가는 대로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는다. 이상하게 집에서 읽을 때보다 밖에서 읽을 때가 더 몰입이나 집중이 잘 된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렇게 열심히 읽지 않는다고 해도 책은 좋은 액세서리가 된다. 읽어도 좋고 안 읽어도 좋은, 심심하면 한두 줄 읽다가 덮어버려도 좋은, 그래서 없으면 허전한 것. 눈을 감은 채 햇볕을 누리다가 살짝 단잠에 빠져드는 것도 그 순간의 일부다. 아니 어쩌면 그 순간의 참된 목적일지도? 그리고 비로소 그 순간이 되어야 휴식은 온전해진다. 잠에 들다 깨다를 반복하다 멍하니 앉아 지나가는 사람도 구경하다 보면 그때가 복잡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세상과의 연결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매시간 매분 확인하던 SNS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혼자 앉아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내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조금 더 명확하게 정리가 되기도 한다. 조금 더 나 자신을 위한 결정을 하게 된달까? 머리를 한 번 비우고 나면 내가 정말 원하는 것들에 집중해 우선순위를 찾고 그것을 실행할 힘까지도 받게 된다. 역시 광합성은 핑계다.
삶에 이리저리 치이며 처량한 기분을 느낄 때 파리를 걷다 보면 도시의 아름다움에 내가 가지고 있던 슬픔이 미화되는 듯한 묘한 감정을 느낀다. 내가 주로 찬란한 슬픔이라고 부르는 이 감정은 무작정 슬퍼하기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황홀하고 그렇다고 마냥 기뻐하자니 지금 내 인생에 침투한 문제가 한둘도 아닌데 이렇게 허허실실 해도 되나? 하는 간극에서 생겨난다. 나는 마냥 해맑기엔 생각이 너무 많고 또 생각이 많은 것치곤 해맑은 사람이니까. 내가 오롯이 느끼는 행복조차도 검열하는 건 나에게 너무 가혹한 게 아닌가 싶으면서도 스멀스멀 피어나는 불안감을 어쩌지 못하는 모순을 느낄 때면 인생이 거대한 농담 같다. 그래도 농담 같은 계절이 찾아와 삶을 조금 더 가볍게 대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좋지 않은가 생각한다. 삶은 원래 감당이 안 되는 거니까 대충 웃고 넘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