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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파랑 Apr 16. 2024

나의 바다, 사랑

수영장 천장에서 빛이 쏟아진다. 형광등에도 타나. 많이 탔어.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말들을 물이 밀어낸다. 물속과 물 밖. 시끄러움과 고요함. - 공현진,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중 


오늘처럼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는 밤에는 나의 작은 원룸이 수족관 같다는 생각을 한다. 꼭대기 층에 사는 데다가 천장이 따로 없는 프랑스식 테라스를 가진 덕분에 빗방울이 낙하하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서 그렇다. 그 규칙적인 소리의 반복이 이 공간을 비현실적으로 만들어 나는 마치 세상과 고립된 나만의 작은 큐브에 갇혀 있는 것처럼 안정감을 느낀다. 물속에 푹 잠기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인데. 


바다 수영에 대해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문학동네에서 매년 출간하는 <2024년 제15회 젊은 작가상>을 읽다가 만난 문장 하나 때문이다. 그날 나는 저녁 여섯 시가 되어 하던 일을 마치고 노트북을 덮은 후 이북 리더기 하나만 들고 늦은 오후의 햇볕 속으로 걸어 나갔다. 걷는 것과 읽는 것 중 무엇을 더 하고 싶은지 채 결정하지 못한 채. 전 날 운동을 무리해서 다리가 여전히 아프다 - 심지어 때때로 저리기까지 하다는 사실은 잠깐 잊었고 열심히 일한 하루를 보상받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렇게 동네에서 가장 큰 공원으로 가 가장 볕이 잘 드는 자리에 대충 주저앉았다. 공원은 이미 역시 나 같은 파리지엔들로 북적였다. 해가 뜨는 날이면 잠시라도 그 순간을 누리고 싶은 강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 겨울을 인내한 자여, 마음껏 달콤한 햇빛을 즐겨라! 저마다 노트북, 종이책, 신문을 손에 쥔 채로 시간을 흘려보내는 사람들 가운데에 자리해 읽던 단편을 마저 읽어 내려갔다. 



수영을 좋아한다. 바다 수영은 그보다 더 좋아한다. 바다 수영은 실제로 차디찬 바닷물 속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는 시간과 빛이 내려 쬐는 해변에 비치타월을 깔고 누워 바닷물을 말리는 시간 모두를 포함하는 말이니까. 나는 그것을 한 시간 같은 네 시간을 보내게 되는 뒤틀린 시간 속의 세계라 부른다. 사실 수영이라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다. 내가 하는 일이라곤 자유형도, 배영도, 평형도, 접영도 아닌 그저 더 먼 곳으로 나아가기 위한 개구리헤엄과 머리를 비우기 위해 온몸에 힘을 뺀 채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튜브도, 물안경도, 거추장스러운 어떤 장비도 필요 없다. 바닷속에 몸을 담그기만 하면 충분하다. 바다와의 가장 직접적인 접촉. 내 몸을 감싸는 차갑고도 따뜻한 감각이 날 안심시킨다.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유명한 말처럼 어쩌면 바닷물 속에 내 모든 자잘한 고민과 스트레스를 녹여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다 위에 누워 귀를 물속으로 감춰 넣으면 완벽히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차단된 고요한 상태에 이른다. 비로소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시끄러운 내 마음속까지도 잠재우는 몇 안 되는 순간이다. 물속에선 SNS도, 메신저도 할 수 없으니까 그저 나로서 - 심지어는 최소한의 수영복만 입은 날 것의 상태인 나로서 - 존재한다.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그 모든 문명의 이기를 벗어던진 날 것 그대로의 상태라니, 이게 현대 사회의 아이러니 아닐까? 이런 시간조차 특권으로 느껴진다.


해변의 모래는 뜨겁다. 스마트폰은 쉽게 발열된다. 높은 온도로 달궈진 폰을 내려놓고 종이책을 집어든다. 필요한 건 책과 노트, 그리고 펜이 전부다. 종이책을 읽다가 자연스레 잠에 빠진다. 책은 단지 깊은 잠을 위한 수단일지도 모른다. 잠든 새 몸에 남아있던 차가운 바닷물이 흔적도 없이 증발한다. 너무 더워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면 그건 다시 바닷물에 들어갈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여전히 차가운 바다에 첫 발을 담그기는 어렵지만 이내 적응한 몸은 물살을 헤치고 나아간다.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헤엄쳐서 태양을 향해 누웠을 때 비로소 완전한 행복을 믿게 된다. 행복해지기는 어렵지만 때로는 그것이 터무니없이 쉽다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다시 뭍 위로 나와 몸을 적당히 말린 후 이번에는 보송해진 손으로 펜을 꺼내 들고 수첩에 몇 자 끄적인다. 문장은 두서가 없고 그저 그 순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가일 뿐이지만 그 순간이 아니면 절대 나오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여기저기 흩어질 단어들을 일단 전부 노트에 붙잡아 둔다. 그러다 또 풍덩. 몸을 말리고 적시고. 행복의 단순성에 대해 고찰.



2020년 7월, 마르세유 근처의 작은 섬, 일 드 프리올에서 다음과 같은 메모를 썼다. ‘발만 살짝 담갔을 때는 그렇게 차갑게 느껴지던 바다가, 의심 가득하던 내가 온전히 몸을 맡기는 순간이 오면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내 몸을 따스하게 안아준다는 사실이 어쩐지 좀 신기하다. 수영을 하고 나와 따뜻한 햇살이 차가워진 몸에 닿을 때 나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꿈과 현실 어디쯤에서 내 영혼이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잠에 들고 깨기를 반복하면서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갈매기 울음소리도, 파도 소리도,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까지 모든 게 내 안의 일부였고 또 나의 바깥이었다.’ 어떤 감각은 평생 기억 한편에 남는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살아가는 내내 바다를 품을 것. 그 순간의 안온만큼은 평생 깨트리지 않을 것. 



파도가 차마 닿지 못하는 해변가 바위 틈에 예쁜 돌을 모아두는 마음까지도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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