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삶의 예술성(l'art de vivre)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게 대화의 미학이다. 프랑스인들은 카페의 테라스에서 커피 한 잔 혹은 파티에서 좋은 와인 한 잔을 앞에 두고 토론하는 것이 일상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믿는다. 파리의 지하철이나 공원에서 사르트르를 읽는 청년들이나 테라스에 앉아 르몽드, 피가로, 리베라시옹(프랑스의 신문사들)을 읽는 중년들은 이런 문화를 보여준다. 프랑스인들은 때론 지나칠 정도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그것을 대변하는 것을 즐긴다. 특히 정치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프랑스인의 열정 중 하나로 레스토랑이나 카페, 바, 그리고 소셜 미디어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팟캐스트 등에서도 매일 다양한 토론 주제로 패널들이 의견을 주고받는 프로그램을 자주 송출하고 신문도 역시 특정 이슈에 대한 심층적인 기사를 자주 다룬다.
프랑스인들과 지내다 보면 이런 특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가족 혹은 친구들과의 식사 시간 역시 장장 4-5시간 이어지는 대화의 장이다. 한 번 프랑스인 친구의 가족 저녁 식사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프랑스 문화의 또 다른 특이점은 세대 간의 어울림에 거리낌이 없다는 점이다. 친구의 부모님, 친구의 이복 오빠, 친구의 친언니, 친언니의 파트너, 친구의 동네 친구, 그리고 나까지 묘한 조합으로 식전주를 마시고 식탁으로 자리를 옮겨 전채와 본식, 디저트까지 5시간 정도 걸린 식사를 했다. 저녁 여섯 시쯤 하나둘 소파로 모이기 시작해 술을 마시다가 여덟 시에 시작한 식사가 열한 시에 끝났다. 심지어는 대학교 친구들과 엠티를 가도 마찬가지다. 테이블 핑퐁 같은 술 게임을 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이 테이블 저 테이블 실내 실외를 안 가리고 여기저기서 대화가 끊임없다. 어떻게 저렇게 할 말이 많은지 신기할 지경이다.
적절한 질문을 던지는 것, 말과 말이 맞물리고 타이밍에 맞게 끼어드는 것 역시 고도의 연습을 필요로 한다. 가끔 질린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힘든 부분도 있지만 사회, 정치적 이슈에 대해 모두가 어떤 의견을 가질 정도로 관심이 많다는 사실은 때로 이 나라를 향한 동경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양질의 대화는 삶에 지적인 영감을 주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니까. 프랑스 대학 부설 어학원에 다니던 시절, 프랑스 대학에서 요구하는 글쓰기를 훈련하는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다. 주제를 정하는 것부터 자료를 찾고 그 자료를 토대로 자신만의 논리를 발전시켜 글로 옮기는 과정까지 모든 게 자발적인 탐색으로 이루어졌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할 때도 이런 식의 훈련 과정을 거치다 보니 프랑스 교육 자체가 토론하고 논쟁하기 좋아하는 문화를 자연스레 형성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전 글 '그래서 네가 얘기하고 싶은 게 뭔데?' 참고 https://brunch.co.kr/@cestlamour/71)
나에게도 늘 함께 나누는 대화가 즐거운 친구들이 있다. 대학 졸업 즈음 취업을 준비하면서 시간을 함께 자주 보내던 우리는 그저 대화의 폭을 넓혀보자는 이유로 북클럽을 시작했다. 같은 책을 일주일에 한 권씩 읽고 모여 내용과 관련된 주제를 여러 개 들고 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의 대화는 자주 만약에 - 로 시작했으며 딱히 인생에 일어나지 않을 일들로 쓸데없이 열을 올리며 토론했다. 책은 그저 대화의 소재일 뿐이어서 혹여나 책을 읽지 않고 와도 그럭저럭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했다. 맨날 똑같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내면서 너덜너덜해진 영혼을 붙잡을 수 있는 일이라곤 이런 쓸데없이 풍요로운 대화뿐이었다. 친구들의 창의성은 한 번도 던져보지 않았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그에 대해 고민해 보게 만들었으며 오가는 문답은 각자의 성향을 파악하고 우리를 좀 더 가까워지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뒤늦게 MBTI가 유행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우리 다섯 중 네 명이 N 성향이고 단 한 명이 S 성향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게 힘든 이유도 모른 채 우리들의 질문에 기어코 상상력을 펼치고 답을 찾아내야 했던 그 한 명의 친구에게 경의를 표한다.)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은 북클럽 대신 연말 연초에 그 해를 마무리하고 다음 해를 여는 송년회를 갖는다. 올해의 잘한 일, 올해의 아쉬웠던 일, 내년에 바라는 일, 내년에 꼭 이루고 싶은 일, 때론 5년 후, 10년 후에 이루고 싶은 일 등을 얘기하며 코멘트에 코멘트를 덧붙이다 보면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북클럽을 하던 시절로부터 8년이 지난 올해, 우리는 그 당시 써놓은 글을 묶어 이북을 냈다. 8년 동안 각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그 시절에 대해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행운이라고 느끼며, 그리고 여전히 우리가 서로를 의지하고 우정을 나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나는 나의 조각들이 우리가 지난 세월 나눈 대화에 전부 흩어져 있는 기분을 느낀다. 내 친구들은 내 삶의 일부, 내 시절의 일부, 그리고 때론 나의 전부다. 나는 이 모든 게 대화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프랑스 문화에 이끌림을 느끼는 것 역시 (때론 징하다고 느끼면서도) 이 때문이 아닐까.
참고 https://polyglottes.org/2017/04/03/quest-ce-que-lart-de-vivre-a-la-francaise/
그리고, 살짝의 책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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