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국내외 정치권에서 등장하는 이 표현은 과도한 비장함 만큼이나 그 해석도 생소하다. '사슴이 여기서 멈추는' 데 왜 내가 책임을 다 지겠다는 뜻이 되는 걸까?
1959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백악관 집무실에 놓인 명패로 유명세를 얻은 이 말 뜻을 이해하려면 미국 개척시대 포커 게임의 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카드를 돌리는 딜러가 누군지는 그의 앞에 박힌(?) 사슴뿔 손잡이의 (buckhorn) 나이프로 알 수 있었다. 딜러가 바뀔 경우에는 그 사람 앞으로 나이프가 넘어간다. 타짜의 '손모가지'를 연상케 하는 이 살벌함은 아마도 판을 주도하는 딜러의 무거운 '책임'을 상기시키기 위한 장치였는 지도 모른다. 행여 딜러가 카드를 돌리는데 실패하거나 부정을 저질렀을 경우 저 칼이 어떻게 사용되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벅 나이프를 간단히 줄여 불리게 된 'buck'은 '책임'을 뜻하게 되었고, 이후 포커판에서 은화 1달러 동전이 칼을 대치한 후에도 그 뜻은 동일하게 유지되었다. (buck이 '달러'라는 뜻으로도 통하게 된 것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Pass the buck은 그 시절 단순히 딜러를 바꾼다는 의미였지만, 지금은 '책임을 전가한다'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통한다.
"Don't pass the buck. You are the manager!"
(책임을 떠넘기지 마세요. 님이 점장이잖아요!")
트루먼 대통령 이후, The buck stops here (혹은 The buck stops with me)은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즐겨 쓰는 멋진 구호로 인기를 얻었지만 양날의 검이 되어 돌아온 경우도 많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건은...
2019년 연방정부 셧다운을 눈앞에 두고 기자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물었다.
"Q: Does the buck stop with you over this shutdown?
(질문: 셧다운은 대통령 당신의 책임입니까?)"
"Trump: The buck stops with everybody.
(트럼프: 책임은 모두가 져야 합니다.)
그는 한 달 전 카메라 앞에서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한 말을 단어 하나를 바꿔 기막히게 뒤집었다. 그러나 공동체 정신에 기반한 그의 답변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은 후에 베로나의 공작이 외쳤던 "모두가 벌을 받았다" 만큼 감동적이진 않다. 그의 신박한 발언은 밈으로 유명세를 타며 그의 대표 어록에 올랐다.
자기모순을 벗어나기 어려운 정치인의 딜레마는, 아마도 모든 것을 책임지되, 결코 아무것도 책임져선 안된다는 존재론적 생존 본능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The buck stops with me...
내가 카드를 돌리겠다는 말이다. 이 판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벅 나이프(buck knife) 한 자루는 내 앞에 꽂혀있다. 그토록 고독하고 무거운 책임감이 싫거든 옆 사람에게 벅을 넘기면 된다. 남 탓을 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 역할을 넘기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