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후보생 시절 200킬로 행군을 할 때 일입니다. 하루 40킬로씩 완전 군장을 하고 걷다 보니 이틀이 지나자 부상자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소대에서도 한 명이 뒤로 처지기 시작했습니다. 허리에 문제가 있던 그는 얼굴이 신음과 고통으로 일그러졌습니다. 상체를 깊게 숙인 그의 발걸음은 점점 느려져 낙오되기 시작했습니다. 행군을 실패하면 임관을 할 수 없기에 안 됐기도 하고, '많이 아프겠다' 동정은 했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다들 물집이 생기고, 발바닥이 벗겨지고, 무릎에 이상이 오고, 그저 헉헉대며 앞사람 군화 뒤만 보고 걷기에도 벅찼으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같은 내무반의 영승이가 허리 아픈 동료의 30킬로 배낭을 벗겨 자기 어깨에 둘러멨습니다. 아픈 동료의 어깨를 툭 치며 '기운 내라'는 짧은 격려와 함께 앞서 나갔습니다. 키도 제일 작고 왜소한 체구의 그가 자기 몸보다 큰 두 개의 배낭을 메고 묵묵히 걷는 그의 모습에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일렁이는 감동은 전 소대원에게 전염되었고 우리에게 새로운 투지가 불타올랐습니다. 영승이가 지고 갔던 그 배낭은 얼마 후 다른 사람의 어깨로 옮겨갔고, 또 다음 사람에게로... 모두가 의기투합하여 아픈 동료의 짐을 나눠지면서 빠질 것 같던 어깨는 덜 아프고 지친 다리는 새 힘을 얻었습니다. 앞에만 보고 걷던 소대원들이 옆과 뒤를 돌아보며 "기운 내자" "다 왔다," 격려의 말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등장했습니다. 그 허리 아픈 친구도 이런 분위기에 흥분했나 봅니다. 그는 룰루랄라 소총 한 자루만 맨 채 대오를 오가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을 겁니다. "야 힘드냐?" "야 힘들어?" 남에게 자기 짐을 떠넘긴 채 위로랍시고 깐죽댄 행동은 모두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배낭은 결국 땅바닥에 팽개쳐졌습니다....
'Sympathy'와 'empathy'의 뿌리는 감정, 고통을 뜻하는 그리스어 'pathos'입니다. 접두사 'sym-'은 '함께'를 의미하고, 'em-'은 '안'을 뜻합니다. 우리 말로는 둘 다 '공감'으로 통하지만 영어에서는 그 정도에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Sympathy는 상대의 곤경에 공감은 하지만 그 사람의 고통이 내 것은 아닙니다. 내가 느꼈던 '많이 아프겠다'처럼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보내는 공감입니다.
Empathy는 상대의 고통에 한 걸음 더 다가갑니다. 정서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그가 있는 자리 속으로 들어가 그의 짐을 함께 듭니다. 그래서 영승이의 한 마디가 그렇게 무게감 있게 우리의 가슴을 울렸나 봅니다. Sympathy가 머리로 하는 연민과 공감이라면, empathy는 체휼(體恤)에 더 가깝습니다. 몸으로 하는 공감. 함께 몸으로 느끼며 그 아픔을 내 것으로 삼는....
끝으로 모두의 짜증을 유발한 그 친구의 대사 "야 힘드냐?"는 'apathy'를 떠올리게 합니다. 'Not'을 의미하는 접두사 'a-'가 붙은 감정의 부재, 즉 타인에 대한 무관심, 무감동, 무공감의 상태입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apathy는 감정의 소모와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보호 본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더 큰 우울이나 자괴감으로 떨어질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벽. 깐죽댄 그 친구의 마음 한편에는 미안함과 수치심이 숨어있었는 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그 친구가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영승이는 지금 뭐 하고 살까 궁금해집니다. 약학을 전공했으니 어느 동네에서 약국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문득 그 문을 열고 들어가, 까만 얼굴에 빼빼 마른 몸, 하얀 가운 차림의 그가 실눈으로 활짝 웃으며 건네주는 한 마디를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