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생 기웅은 이마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찬 기운에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떴다. 이불속 그의 몸은 땀으로 축축했다. 악몽을 꾼 것일까? 의식은 아직 흐릿하여 자신이 잠을 깬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꿈 속인지 불분명했다. 거센 바람에 덜거덕 거리는 헐거운 창문 사이로 잿빛연기 같은 것이 부옇게 스며들고 있었고, 커튼 사이로 침입해 들어온달빛줄기가 좁은칼날처럼 천장 일부를 창백하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부연 시선으로 무거워진 눈을 다시 감던 그는 무언가 눈에 거슬려 게슴츠레한 눈에 힘을 주었다. 가늘고 창백한 빛줄기가 끝나는 그 어둠의 경계선에… 뭔가가 있었다.
“어 저런 게 천장에 있었나? 형광등? 그림자?... 아닌데… 저건…”
꿈틀 움직였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초점을 맞추기 위해 일렁이는 눈을 다시 감았다 떴다. 검은 덩어리가 분명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이것이 꿈이길 바라며 다시 눈을 감았다 떴다. 천장에 반쯤 묻혀있던 덩어리는 그새 꿈틀대며 부풀어 천장 아래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의 몸통 같은 검은 윤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웅은 머리털이 쭈뼛 서고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잠은 달아나고 의식은 말똥 하니 돌아왔다. 꿈이 아니었다. 그는 옆에서 자고 있을 룸메이트를 깨우려고 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가위에 눌린 듯 고개도 돌릴 수 없었고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그것은 이제 뭉툭한 팔 같은 것을 뻗으며 서서히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천천히… 천장으로부터 그를 향해 하강하기 시작했다. 방에 스며든 검은 연기가 그것을 감돌며 에워싸는 것이 달빛에 보였고 연기를 빨아들인 그 검은 형체는 점점 더 분명한 사람의 실루엣처럼 보였다…. 그는 너무 무서워 눈을 꼭 감고 간신히 입술을 달싹이며 어렸을 때 배웠던 주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 우… 이... 나…”
그가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어느 틈에 눈앞까지 내려온 시커먼 그것은 공중에 부양한 채 주기도문을 따라 하고 있었다. 인간의 음성이라기보다는 마치 좁은 틈새를 통과하는 바람 소리 같았다. 그는 숨이 턱 막히며 마지막 한 마디를 간신히 뱉었다.
“예수가… 물러가래… 너…!”
“여이…가… 가물… 너… 크..이... 키키키…”
기웅의 이마 위로 똑, 똑, 서늘한 액체가 몇 방울 떨어졌다. 순간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고 방에 흩뿌려진 달빛에 그것의 검은 형체가 훤히 드러났다. 천장에는 발부리 같은 촉수들이 붙어 춤을 추고 있었고, 그로부터 마치 뉴런의 축삭 돌기처럼 가는 몸통이, 늘어진 껌처럼 침대 쪽으로 뻗어있었다. 그 몸통 끝에 붙어있는 시커먼 인간의 상체와 머리 그리고 목에 붙어 덜렁거리는 팔이 보였다.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는 몸에서 시냅스의 가지돌기 같은 촉수들이 곳곳에서 삐져나와 기웅의 얼굴과 상체를 더듬듯이 훑었고 동시에 그것의 목에 붙어있던 팔은 제 자리를 찾아 어깨 밑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순식간에 꼴을 갖춘 형체는 이불 위로 나와있는 기웅의 왼쪽 팔, 가슴, 목, 머리와 흡사했다. 검은 달걀 같은 머리는 자리를 찾듯이 위아래, 좌우로 팽이처럼 핑그르르 몇 바퀴 돌더니 갑자기 멈췄다. 180도로홱 돌린 얼굴은 기웅 자신의 얼굴이었다. 눈에 검은 구멍이 뚫려있고 입은 빗살처럼 벌어지고 있다. 기웅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동시에 쫙 벌어진 아가리가 기웅의 머리를 삼켰다.
“악!!!!!!”
그러나 아무도 그의 비명을 듣지 못했다. 뱀에게 삼켜진 먹잇감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언의 절규와 마지막 경련뿐….
기웅의 룸메이트는 잠결에 인기척을 느껴 친구 쪽 침상을 힐끗 봤다. 친구는 머리를 돌린 채 엉덩이를 들고 꿈틀대고 있었다. ‘자식 요란하게도 자네….’ 그는 목을 한번 긁고 입맛을 다시며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달빛은 강한 바람에 내몰려 구름 뒤에 숨고, 땅에서연기처럼 스멀스멀 올라오는 검은 입자들은캠퍼스의 가로등불을 삼키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