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교수는 T. S. 엘리엇(Elliot)의 시 할로우 맨(The Hollow Men)을 강의하고 있다. 학생들은 그 난해한 시인의 의식 세계의 담벼락을 넘지 못한 채 몽롱한 표정으로 입을 반쯤 벌리고 최면 상태에 빠져들고 있거나, 몇 명은 지난밤의 숙취 때문인지 아예 책상에 머리를 묻고 있다. 피교수는 그나마 눈을 맞춰주는 한두 명의 학생들을 등대처럼 의지하며 강의를 끌고 가는 중이다.
“자 이제 해석을 해볼까? 잘 들어봐.
‘우리는 텅 빈 인간들이다
우리는 인형들이다
서로 기대어 있는
머리는 짚으로 채워진. 아!
함께 속삭일 때
우리의 메마른 목소리는
고요하고 무의미하다
마른 풀밭의 바람처럼
혹은 마른 창고의
깨진 유리를 밟는 쥐의 발소리처럼
모양 없는 형상, 색채 없는 그림자,
마비된 힘, 굳은 몸짓;
눈을 똑바로 뜨고 죽음 저편의 왕국으로
건너간 자들이 혹여 기억하는 우리는
길 잃은 가련한 영혼들이 아니라
텅 빈 인간들이다.
인형들이다.’
자, 우리가 영시를 공부하면서 범하기 쉬운 실수는, 당시의 배경이나 번역 등에 갇혀서 정작 시를 감상하는데 가장 중요한 감흥을 놓치기 쉽다는 것이지. 시를 읽으며 그 이미지와 언어에서 내가 느끼는 즉각적인 인상이나 영감, 공감이 곧 감흥이다. 그런 의미에서 "We are the hollow men.." 우리 시대의 할로우맨은 내게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 걸까?”
강의실의 분위기는 수도원의 그것처럼 무겁고 갑갑하다. 학생들은 대부분 면벽참선을 하듯이 피교수의 눈길을 피해 책상이나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피교수는 이 강의실이 마치 할로우맨들이 사는 동굴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래도 꾸준히 눈을 맞추고 있던 과대표 주영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주영 군 한번 얘기해 볼까?”
그는 눈을 두어 번 끔뻑거리다가 입을 뗀다.
“음… 내용이 되게 어두운 거 같은데요… 머리가 짚으로 채워져 있다는 건 허수아비 같은 사람, 음... 인형이라는 건데, 생각을 하지 않고 사는 현대인을 말하는 거 아닐까요?”
“그러니까 사고를 하지 않는 현대인에 대한 풍자 같다?”
“그렇죠.”
“좋아. 그럼 시인은 왜 반복적으로 죽음과 죽음 저편의 나라를 언급하고 있을까?”
“끙~ 글쎄요… 엘리엇이 기독교인이라서? 생각 없이 사는 기독교인을 풍자? 아 잘 모르겠습니다.”
“아냐, 좋아. 지혜는 어떻게 생각하지?”
“엄… 교수님, 질문 있는데요… 이거 이번 시험 범위에 들어가나요?”
“물론이지.”
한숨소리와 함께 ‘아 망했다,’ ‘너무 어려워’ 등의 웅성거림이 쏟아져 나온다. 이때 민주가 손을 번쩍 든다. 형이상학파 시인인 존 단(John Donne)의 ‘벼룩’을 가르칠 때 그 시를 희화한 ‘모기’라는 즉흥시를 낭독해 그 기발함에 모두가 박장대소한 재미난 학생이었다. 활달한 성격과는 달리 생각에 잠겨 말이 없을 때에는 그 누군가와 너무도 닮아 자꾸 눈길이 가곤 했다.
“자 조용. 그래… 어… 학생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볼까?”
“제 이름을 기억 못 하시는 교수님, 저는요, 이 시가 남자인 엘리엇 씨의 참회라고 생각해요.”
“이름을 기억 못 하는 건 아니고, 근데 참회?”
“네. 제목이 할로우맨, 텅 빈 남자들이잖아요. 그니깐 엘리엇 씨를 비롯한 남자들이 다 허수아비, 허깨비, 속 빈 강정, 쥐 발톱 같다는 자기 고백 내지는 반성? 어머 어머 그러고 보니 허수아비처럼 엎어져 자는 사람들, 다 남학생들이군요. 허수아비 남자. 그러고 보니 허수도 아비네요. 어미가 아니라 하하하~.”
피교수는 시의 제목을 뒤트는 민주의 당돌한 발언이 왠지 어이없으면서도 재밌어서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주영이는 민주의 공격에 화가 났는지 손도 안 들고 바로 쏘아붙인다.
“야 김민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Man은 여기서 일반 명사야. Mankind 몰라? Man은 남성 여성을 다 포함하는 일반 명사라고.”
민주가 받아쳤다.
“아 그래요 선배? 그럼 나는 남자 화장실 가도 되는 거네? Men이라고 써져 있으니까? 여자도 포함되니까 그치?”
“아 얘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고 있네.”
민주가 혀를 날름 내밀며 주영을 놀린다. 이때 고개를 처박고 있던 귀남이가 손을 번쩍 들며 유레카를 외친다.
“교수님 저 알았어요! 이거 귀신 얘기죠? 저 세상 간 사람들이 쓰윽 이쪽을 돌아보니까 와 딱 보여! 이 세상이 귀신 천지야. 거리에, 길거리에 막 한 가득인 귀신들이.. 하알로우~~~ 하~알~~~로우~~~. 바람 소리.. 우는 소리... 하~~아~~알~~~로~~~우…. 우히히히히~~~!”
귀남이의 너스레에 모처럼 강의실에 웃음이 넘쳐흘렀다. 피교수는 동희와 맹조교의 도플갱어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지며 저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갑자기 강의실 한 편이 써늘함을 느껴 반사적으로 돌아봤다. 구석 그늘진 자리에 동희가 있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학생들의 머리와 어깨 사이로, 그의 검은 옷, 창백한 얼굴과 손가락이 보였다. 그가 돌아왔다…! 그리고 까만 야상의 짧은 소매 위로 그의 앙상한 팔목과 하얀 손이 서서히 허공으로 솟았다. 그가 손을 든 것이다. 대낮의 강의실이라는 단단한 현실을 부수고 들어온 그의 출현에 피교수는 공포와 함께 묘한 분노를 느꼈다. 피교수는 그의 질문을 받을 것인가를 잠깐 망설이다가 그를 무시하기로 했다.
“자~ 그만… 다음 시구를 보도록….”
그러나 저마다 농담 던지기에 신이 난 학생들은 아무도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순간 민주에게 삿대질을 하고 있는 주영이의 등 뒤로 나무가 자라듯 앙상한 손이 올라왔다, 열을 올리고 있는 민주의 어깨에서도 팔이 자라나고 있었다. 지혜와 다른 학생들의 머리, 허리, 얼굴, 그리고 다리에서 허연 손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손들은 모두 달랐다. 동희의 길고 앙상한 손 외에도, 매니큐어를 칠한 여자의 손, 아이의 손, 화상 입은 조막손, 털이 나고 거친 남자의 손, 심지어 어떤 손은 손등이 없이 손가락만 보이기도 했다. 이 손들은 순식간에 흐물흐물 콩나물처럼 자라나 천장까지 닿았고, 천장에 닿은 손들은 길고 하얀 손가락으로 걸으며 이동해 벽을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문에 닿은 손가락들은 거미처럼 유리 위를 타고 오르기 시작하고 그 손톱들이 내는 틱틱틱 소리들이 빗소리처럼 나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몸에서 멋대로 자라난 손들은, 절단된 듯, 이어진 듯, 사방으로 무채색의 팔다리가 뻗어있는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연상시켰다. 그림 속 쓰러진 자의 힘없는 손처럼, 하늘을 향해 절규하는 손처럼, 이제 이 손들은 강의실 안의 산자들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마치 자신들이 여기 있다는 듯이. 한 번이라도 봐 달라는 듯이. 학생들 모두 수십 개의 팔들에 휘감겨 있었고 심지어 어떤 손은 한 학생의 머리를 관통하여 이마로 뻗어 나와 웃고 있는 상대방의 눈앞에서 손가락을 흔들고 있었지만 아무도 이 손들에 반응하지 않았다. 교탁 위로 손 하나가 툭 넘어오더니 봉숭아 물을 들인 손톱으로 교탁 위를 톡톡 치고 손바닥을 들었다. 피교수의 눈과 마주친 손바닥은 질문을 하는 것 같기도 했고, 인사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손이 천천히 피교수를 향해 다가와 그의 손 위에 포개어졌다. 피교수는 움찔했으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따뜻한 체온도, 살갗의 표면도, 어떤 생기 있는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연기처럼 그곳에 머물러 있을 뿐 피교수의 무엇과도 닿아있지 않았다. 교실을 뒤덮은 손들은 시각적으로는 기괴한 광경이었지만 누구에게도 연결되지 않은 환영이요 허깨비일 뿐이었다. 문득, 피교수는 자신의 손을 맞잡은 연기 같은 손은 자신의 체온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어쨌든 이곳은 강단이고 교수인 그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 용납하기 어려운 미망을 물리치고 현실의 방어선을 지켜내야 했다. 그는 목소리를 높여 학생들에게 말했다.
“자 그만! 모두 눈을 감자. 그래 꽉 감아. 그리고 손을 뻗어 봐. 손이 닿지 않는 곳에는 마음으로 기억으로 손을 뻗어봐라. 내 옆에 앉은 사람이 누구지? 내 앞에는 누가 앉아있지? 그 사람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지? 이름이 뭐지? 맨 앞에는 누가 앉았지? 맨 뒤 구석에 혼자 앉은 사람은 누구였더라? 어, 몸통은 보이는데 얼굴은 흐릿하네? 얼굴은 보이는데 누군지 모르겠네? 얼굴도 이름도 모르겠네? 걔가 조금 전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무슨 몸짓을 했더라? 생각할수록 기억은 텅 비고 주변이 온통 뿌연 안개 속이네? 아니 그걸 대체 왜 알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지? 내 앞가림하기도 바쁜데 그렇지? 그렇다면 자신에 대해서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지? 10분 전에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마지막으로 맘껏 웃었던 게 언제였지? 수치심에 홀로 펑펑 울었던 게 언제였지? 나는 괜찮다고 자신을 다독인 건 언제였지? 마지막으로 거울 속 내 눈을 바라본 게 언제였지? 뭐야 내 기억도 지워졌어? 남을 지운 내가, 남에게 지워진 내가, 스스로 지운 내가 이 시간을 지우며, 이 지워질 공간에 나처럼 텅 빈 인간들과 함께 앉아있네. 귀신은 억울해 울기라도 하지만, 텅 빈 나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인형일 뿐이네.”
“교수님 무섭습니다.”
주영이가 떨며 침을 꼴깍 삼켰다.
“아니, 아니다. 무서워하지 말자. 자 이제 눈을 감은 채로 손을 뻗어라. 옆 사람의 손을 잡아라. 꼭 잡아라. 체온이 느껴지지? 살아있는 떨림이 전해오지?.... 그래, 느낀 사람들은 자 이제 눈을 뜨자.”
피교수는 눈을 떴다. 교탁과 강의실을 가득 기어 다니던 손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학생들은 양 옆과 뒤를 돌아보며 웅성거렸다.
“너 거기 있었냐?”
“우와 네 손이었네.”
“신기하다. 왜 몰랐지?”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는 할로우맨이다. 서로 기억할 때 우리는 인간이다… 강의 끝.”
민주가 브라보를 외치며 갑자기 박수를 쳤다. 몇 사람이 따라 쳤다. 학생들은 술렁이며 우르르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피교수는 빈 강의실에서 동희가 앉았던 빈자리를 바라봤다. 말은 보통 생각을 따라간다. 그러나 조금 전 했던 피교수의 강의는 달랐다. 고삐를 놓친 말들이 먼저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고 생각의 그릇은 그 말들을 담아내기에 바빴다. 눈앞의 공포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본능이었을까? 아니면 자기 앞의 그 연기 같은 손이 그에게 어떤 교감과 영감을 준 것일까? 아니면 말을 걸어온 동희에게 피교수는 자신의 답을 한 것일까? 그는 술에서 깬 사람처럼 갑자기 부끄러워져 총총히 강의실을 나섰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낡은 교탁에서 끼익 하는 소리가 났다. 어두운 교탁 밑에서 누군가가 생각에 잠긴 듯이 손가락을 톡톡 두드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