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쥔 주먹... 손가락 쪽을 위로 향합니다... 그리고 주먹을 천천히 폅니다. 손바닥은 하늘을 보고 있고, 스쳐가는 시원한 바람이 느껴집니다.
Let it go.... 놓아주기...
쥐고 있는 것들을 놓아주는 연습입니다.
같은 사역동사로 분류되어 힘과 의지로 강제하는 'make'나 'have'와 달리, 'let'은 그저 허락하고 흘러가게 놔둡니다. 꼭 쥐었던 그립을 놓고 그 녀석을 손바닥 위에 가만히 둡니다. 스스로 날아가도록, 혹은 바람이 데려가도록, 시간이 치유할 수 있도록.
매테를링크의 <펠레아스와 멜리상드> 첫 장면에는 퇴락한 성을 청소하는 하녀들이 등장합니다. 아침 햇살이 더러운 성의 추함을 드러내기 전에 바닥과, 계단과 창틀을 닦으며 연신 물을 더 가져오라고 외치지만 '결코 다 닦을 수 없을' 거라고 탄식합니다. 문지기는 대홍수의 물을 다 쏟아부어도 불가능하다고 옆에서 거듭니다. 이 장면은 인간의 부질없는 노력으로 피할 수 없는 두 주인공의 비극을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때로 인생에 대고 곧잘 걸레질을 합니다. 내 인생의 오점들, 흠집들, 부끄럽고, 악하고, 은밀한 치욕들을 부지런히 걸레질해서 생기는 족족 지워버리고 싶어 합니다. 때자국 없는 마룻바닥이 마치 내 본연의 인생인 것처럼, 조막만한 걸레를 꽉 움켜쥐고 인생의 거대한 마룻바닥을 박박 문지릅니다.
아무리 꽉 쥐고 틀어막아도 내가 통제할 수 없이 내 안에서 켜켜이 쌓여가는 앙금들, 회한들.... 이제 손을 펴고, 그 위에 올려놓고 속삭입니다. Let it go...
가슴을 후벼 팠던 상처의 말들... 돌이킬 수 없는 실패와 치욕의 순간들... 나의 잘못으로 떠나간 사람들... 악몽처럼 꼭 돌아와 이불킥 하게 만드는 모든 기억들... Let it go... Let it go... 꼭 쥔 손안에 가두고 지우려던 노력을 거두고, 머물던, 떠나던, 나의 일부로 보듬고 시간의 바람에 실어 놓아주기...
때로 놓아주는 행동은 세상에 대해 '나는 나'임을 선포하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겨울왕국>의 엘사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Be the good girl you always have to be (늘 착한 아이가 되자) Conceal, don't feel, don't let them know (감춰, 느끼지 마, 들키면 안 돼) Well, now they know (흠, 이젠 다들 알잖아) Let it go, let it go (놔둬,놔둘래.) Can't hold it back anymore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Let it go, let it go (놔둬,놔둘래.) Turn away and slam the door. (돌아서서 문을 쾅 닫아버릴거야.)
사회의 관습과 주변의 기대에 길들여진 '착한 소녀' 엘사의 혁명적인 자아 선언은, 예쁘게 따라 부르던 꼬마들이 질풍노도의 시기에 접어들면 각성의 노래로 돌아와 부모님들을 놀라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비틀즈의 "Let it be"도 놓아주기의 지혜를 노래합니다. "어둠의 시간에 엄마는 바로 내 앞에서 서서 지혜의 말씀을 해주시네, '내버려 두렴 (let it be)'"
누군가를 상담하고 격려할 때, 어쭙잖은 조언을 주기보다는 이 말들로 대신합니다.
Let it go. Let it be.
폭설도 햇살이 들면 땅으로 스며들고, 폭우도 구름이 걷히면 냇물로 흘러가는 것처럼, 바람이 데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그렇게 시간의 흐름 속에 놓아두라는 '엄마 메리'의 말씀이 그에게 격려가 되기를 기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