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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ille Mar 09. 2024

L7...보다는 잭 인 더 박스

영어로 보는 삶의 풍경 #17


L7은 사각형(square)을 의미하는 은어다. 손가락으로 L과 7을 만들면 아래 그림처럼 사각형이 만들어진다.



Square는  “지루하거나 답답한 사람”을 의미한다. 상자 안에 갇혀 새로운 것을 거부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 둥근 원을 이해 못 하는 경직된 직각 사고를 하는 사람을 놀리는 통칭인데 1920년대의 재즈시대부터 쓰였다고 한다. 그런데 대학 4학년이 1학년의 언어를 이해 못 하고, 1학년이 4학년을 꼰대라고 부르는 이 시대에 아래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다 (20년대 'hip'의 원조였던 재즈인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S/he’s a bit of a square. (쟨 좀 답답해.)


대학에서 가장 확고한 L7은 교수들 가운데 있다. 대부분 훌륭하신 분들이지만 간혹 학문적 깊이와 별개로 자신의 쪼잔한 기준과 사각형 잣대로 학생들을 재단하고 모욕하는 L7 교수들은 동료가 보기에도 딱하다. 고생하는 학생들에게 위로와 애도를 보낼 뿐이다. 태생적으로 교수는 잘 바뀌지 않는다. 가르치는 것이 직업(병)이기 때문이다. (글쓴이도 포함된다.)


학생들은 L7이 아니라 '잭 인 더 박스(Jack in the box)'다. 태엽을 돌려주고 자극해 주면 알에서 부화하듯 박스를 열고 뛰어오른다. 예술 교육은 특히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신을 가두고 정형화하는 모든 형태의 박스들을 깨고 밖으로 나오는 지난한 과정. 직선을 당연한 것으로, 불변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휘어 곡선으로 만들 수 있는 상상력과 용기. 그런데 교육의 태엽을 돌리다 보면 박스 속 잭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태엽을 감아야 할 때 풀어버리고, 풀어야 할 때 열심히 감고 있다. 자극과 숙성의 균형을 맞추기가 참 힘들다. 해가 갈수록 강의실에 조용한 박스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좋은 교육자가 아니라는 자괴감이 든다. 어쩌면 그들은 내 눈에 박스에 갇혀있을 뿐 그 안에서 자유롭고 뛰놀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스 안에 갇힌 것은 젊은 세대로부터 멀어진 자신인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잊혀지지 않는 한 제자가 있다. 그는 스스로 박스에서 튀어나와 여러 가지 의미로 나를 놀라게 했다.


그는 지금 봐도 소화가 쉽지 않은 빨간 반바지 차림으로 강의실에 들어왔다. 덥수룩한 수염에 털이 많이 난 다리와는 참 어울리지 않는 자유분방한 패션이었다. 자신을 과일 이름으로 불러 달라던 그는 수업 시간에 곧잘 손을 들고 왜 교수님 말만 맞냐고 받아쳤다. 그건 그렇다. 왜 내 말만 맞아야 할까? (나는 꼰대였다) 어느 날 그는 학교를 떠나겠다며 기차에 올라 내게 긴 문자를 보냈고, 나는 웃기지 말고 빨리 돌아오라는 간절한 답신을 한 기억도 있다.


그가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작법 시간에 쓴 그의 첫 번째 이야기다. 하늘에서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서 지상으로 추방된 선녀 오비녀. 그는 한국에 내려와 별 볼일 없는 대학생을 만나게 된다. 이후 둘은 서로의 마음을 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중간부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데 아무튼 압권은 극의 결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오비녀는 다시 하늘로 승천하게 된다. 청년에게 작별을 고하며 하늘로 오를 때 맥주의 비가 내려 온 세상을 적신다. 청년의 근심은 희망으로 바뀌고, 싸우던 커플들은 화해의 포옹을 하고, 요금으로 다투던 택시기사와 손님은 서로 돈을 건넨다. 이 세상에 반목하고 싸우던 모든 사람들이 맥주의 비에 흠뻑 젖어 화해하고 사랑을 회복한다... 박스에서 튀어나온 잭에게 코를 얻어맞은 것 같은 얼얼한 기쁨이었다. 무서운 박스에 갇힌 사람들의 손을 잡고 박스 밖으로 뛰어오른 그의 작업은 얼마전 넷플릭스에 올랐다.


재즈 시대 이전까지 square는 긍정의 의미가 강했다. 믿을 만하고, 정직하다는 의미로 통하며 시대의 이상적 기준을 지탱해 왔던 직선은 이제 더 이상 시대를 담아내지 못하는 것일까? 가두고, 나누고, 규격화하는 직선보다는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가 말한 곡선의 미학에 더욱 공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The straight line is godless and immoral. The straight line is not a creative line, it is a duplicating line, an imitating line.”


참고로, 사각형 상자 위로 깡총 뛰어오르는 잭은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HundertWasser, Irinaland Over the Balkans, 1969 나선과 곡선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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