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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ille Mar 27. 2024

Keep Calm & Carry On...항해의 나침반

영어로 보는 삶의 풍경 #14


"침착하게 일상을 계속하라."


1939년 붉은 배경에 단순한 타이포로 중앙에 새겨진 이 슬로건이 정부가 제작한 선전물 중에 가장 인기를 끄는 아이템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전운이 감돌던 당시에 영국 정부는 전쟁에 대비해 세 가지 슬로건을 만들었는데, 하나는 "당신의 용기, 당신의 쾌활함, 당신의 결단이 우리에게 승리를 줄 것이다"였고, 다른 하나는 "자유가 위태롭다. 있는 힘을 다해 수호하라"였다. 목표가 분명한 두 슬로건과는 달리 다소 그 의도가 애매한 '평정심'의 슬로건은 공식적으로 인쇄된 적이 없다. 마치 처칠 수상도 저 말을 했을 것 같고, 독일의 공습이 반복되던 런던 거리에 이 포스터가 이곳저곳에 붙어 국민들을 격려했을 것 같지만, 그것은 우리의 착각이다. 2000년도에 어느 고서점에서 원본(커버 이미지)이 발견되기 전에는 영국 시민들은 저 포스터를 본 적이 없다.



따라서 빛바랜 유니언잭 위에, 혹은 시가를 물고 있는 처칠 수상의 사진 위에 수 놓인 이 문구는 한편으로는 기만적이다. 역사적인 이미지 한 조각에 유통되지 않았던 슬로건을 조합해 과거에 대한 허구적인 향수를 자극하는 셈이니 말이다. 그때도 힘들었지만 이렇게 이겨냈으니 지금도 참고 살아라... 그래서 혹자들은 불량정부가 "닥치고 하던 일이나 해라"는 식의 노스탤지어 프로퍼겐다로 언제든 악용할 수 있다고 경계하기도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전시 선전물로는 약해 보였던 모호함이 현대에는 매력 있는 범용성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이 슬로건은 영미권에서 가장 사랑받는 밈(meme)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 Keep Calm 뒤에 자신이 원하는 말들을 갖다 붙여서 나만의 이야기, 나만의 프로퍼겐다, 나만의 부록과 분기를 무한대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Keep Calm and Write On....


오래전, 어느 기차역 플랫폼에서 떨고 서 있을 때 찬 바람이 한 자락 불어왔다. 그 시린 바람을 맞으면서 문득 든 생각.... 바람이 분다. 글을 써야겠다. 나의 항해 일지는 그렇게 조용히 시작되었다....


쏜톤 와일더(Thornton Wilder)의 <우리 읍내 Our Town> 3막에서, 죽은  에밀리는 무대감독에게 12살을 맞는 생일날 아침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청한다. 그날로 돌아간 그는 젊은 엄마와 아빠를 반갑게 만나지만 곧 절망하고 만다. 매 순간이 너무 소중한데,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인데 모든 것이 너무 빨리 흘러가는 것이다.


"오 엄마, 딱 일분만 날 봐주세요, 진짜 날 보는 것 처럼요.... 잠시지만 지금은 모두가 함께 있잖아요 엄마. 우리 서로를 바라봐요."


불어오는 바람을 가둘 수 없고, 흘러가는 시간을 잡을 수 없지만 바람의 느낌과 시간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글로 보관해 둔다. 비가 오고 태풍이 부는 날이면 글을 쓰며 햇살을 기다리고, 뜨거운 태양 아래 바람 한 점 없을 땐 비와 구름이 찾아왔던 그날의 기록을 찾아 읽어본다. 이 여정에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음을 기억하고 잠잠히, 평안한 마음으로 기쁨과 감사를, 불안과 실패를 담담히 기록한다. 몇 년 전의 기록을 읽어보면 어느 평범한 날, 어머니가 내게 건넨 한 마디가 눈에 띄고, 잊혀진 기억은 잠시 생명을 얻어 상상과 연상 속에 그날의 정경과, 이제는 볼 수 없는 어머니의 미소를 눈앞에 되살려 낸다. 에밀리의 고백처럼 서로 바라보지 못하고 너무 빨리 흘러간 시간들이었지만, 그래도 극 속의 에밀리처럼 그 잃어버린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법의 열쇠가 글 속에 숨어있다.


때론 너무 지쳐서, 때론 감정의 격랑 속에서 글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면 상상 속 펜을 든 처칠은 시가 연기를 날리며 내게 윙크해 준다. 기만의 노스탤지어가 내겐 항로를 인도하는 나침반인 셈이다.


Keep calm and carry on, my 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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