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Siri
핸드폰에 진동이 울리길래 확인해 보았더니 이런 알림이 도착해 있었다.
‘금일 기기분석 2 수업은 휴강입니다.’
요즘 교수님들이 휴강을 많이 하신다. 사실 휴강을 할 때는 기쁘지만, 그 대가를 가까운 미래에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눈에 보일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수업 때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강은 금요일 9시에 할게요.”
교수님께서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낸 순간, 얼음물을 들이부은 것 같이 차가워진 강의실의 분위기를 나는 봤다. 과연 봤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금요일 1교시 수업이라는 말의 무게를 교수님은 과연 아실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 교수님과 눈이 마주쳤고 그 순간 교수님의 마음속 생각이 마치 귀에 들리는 듯했다.
‘내가 제일 하기 싫다 얘들아.’
사실 사람은 다 똑같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친한 후배들과 이야기를 조금 했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수업 하나에만 국한된 일이 아닌 듯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휴강 소식에 누구는 기쁨을, 누구는 짜증을 표출했고, 누구는 어차피 수업 듣는 시간은 똑같은데 왜 짜증을 내냐는 말을 했다.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나서 금요일 9시 수업을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는 나를 상상해 보았다.
‘....’
단전에서부터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자기 전에 6시 30분 알람을 맞춰 놓고, 시간을 자꾸 확인하며 ‘지금 자면 얼마나 잘 수 있지?’ 따위의 생각을 하는 나를 상상하니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금요일 아침이 왔고, 아이폰의 스피커에서 들리는 짜증 나는 알람소리는 내 눈꺼풀을 기어코 들어 올렸다. 내 몸을 일으키기는 못 했지만 말이다.
“시리야...”
“네.”
“10분 뒤 알람 맞춰줘...”
‘10분만 자고 일어나서 가자’라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을 나는 마침내 눈을 떴을 때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위화감이 드는 이유는 그 당시의 나도 알고 있었고,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번개처럼 일어나 핸드폰의 시계를 확인했다. 그때 내가 몸을 일으키는 속도는 아마 25년의 인생 중 거의 최고의 속도였다.
핸드폰을 켜자, 잠금 화면 상단에 몇 개의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7:30’
“이런 ******”
차마 글로는 쓰지 못할 욕설을 내뱉었다. 나를 깨우지 못한 시리에게 하는 욕인지, 아니면 일어나지 못한 나에게 하는 욕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일어나 씻으러 튀어 들어가면서 속으로 시간 계산을 했다.
‘씻는 데 10분, 옷 입는 데 5분, 차 빼는 데 5분, 학교 가는 데 대충 1시간 잡으면....’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인간이 얼마나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무력한 존재인지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나와서 운전을 하는 도중, 아직도 갈 길이 먼데 차가 앞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고속도로로 들어가는 길에 사고가 나서 생긴 교통 체증 때문이었다.
집에서 나올 때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을 가졌었지만 그 여유로움은 초조함으로 바뀌었고, 초조함은 분노로, 마침내 지각이 확정되었을 때에는 체념으로 바뀌었다.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
학교를 가거나, 약속이 있거나, 출근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아침 햇살과의 싸움을 한다. 나는 천성이 게으른 사람이라 이 싸움에서 거의 모두 패배하고 만다. 솔직히 조금 걱정이다. 아직 아침과의 싸움에서 이겨본 적 없는 내가, 점점 사회에 나갈 나이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늦게 일어나는 건 단지 내 성적이 A+에서 B+로 내려갈 뿐이다. 하지만 출근을 늦게 하는 건 그 정도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머지않은 미래에 졸업을 하고, 취업 준비를 통해 회사에 취업할 나를 상상해 보면 뭔가 첫 단추부터 어긋나 있다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회사에 출근해 상사한테 혼나고, 업무를 하고, 회식을 가고 이런 것들을 상상하기 전에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는 것 자체가 가능한 건지 알 수 없어서 그 이후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한 5년쯤 더 지나서 이 글을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과거의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이였다고 생각할지, 아니면 네 말이 맞았다고 할지는 미지수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우리는 항상 나를 일으키려는 햇빛, 알람소리와 싸우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매일 눈을 뜨자마자 편하게 일어나지는 못하는 존재라는 것이 아닐까.
매일의 시작마다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나에게, 또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격려를 보내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든 것은 당연하다. 그로 인한 피로감에 휩싸여 저녁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쉴 수밖에 없는 것도 잘 안다. 내가 그랬고, 지금도 그러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오늘을 기점으로 조금만 더 부지런해져 볼까? 아침에 조금만 일찍 일어나 볼까? 밤에 조금만 더 일찍 잘까? 운동도 매일 가고, 해야 할 실험이나 다른 일들도 미루지 말고 해 볼까? 이런 생각을 했다.
막상 글로 써놓고 보면 별 거 아니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면 하루 만에 의지가 바닥날지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극복해야 하기에,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하는 것뿐이다.
당신이 이 글을 보고 자극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글을 보고 자극받은 당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앞서 말한 것들을 지켜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024. 10. 16
ps. 물론 내일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