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에 대한 고찰
계속 예전에 한 말들을 가져오는 것 같지만, 전에 출간한 책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일상적인 반복은 우리의 삶에 지루함을 준다. 그리고 그 지루함에 압도된다면 지루함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정신이 닳아 버리기도 한다.’
-미다스북스, 우리가 사랑하는, 어쩌면 우리의 전부들, ‘뻔한 반복의 향연’ 중-
이를 ‘매너리즘’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매너리즘이란 단어는 이런 데 쓰는 게 아니다. 아마도 르네상스 시대와 바로크 시대의 사이에 존재하는, 예술로써 기술된 작은 시대의 파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조금 찾아보니 최근 매너리즘이 왜 반복에 지루함을 느끼는 것을 뜻하는지, 그로 인해 지치고 힘들어하는 것을 일컫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예술사에서 매너리즘 시대에는 왜곡되고 과장된, 그래서 기괴한 형태의 작품이 많이 등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이 모두 비슷한 특색을 가지고 있어 오히려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고, 작품만의 특색을 잃어버렸다. 이 부분에서 파생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참고로 사실 여부는 검증되지 않았고, 검증할 수도 없다.
아무튼, 우리가 말하는 매너리즘은 예술사와 접점이 없어도 모두가 한 번씩은 느낀 감정들이다. 작게는 영화나 드라마의 지루함, 크게는 매일의 일상이 똑같아서 느끼는 무기력감까지 모두 매너리즘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되살아난 기억이 하나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영어 말하기 수행평가에서 있던 일이다.
당시 우리 학교에는 원어민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선생님과 일대일로 우리나라 신화에 관한 이야기를 1분 동안 하는 것이 주제였다.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저 주제를 들었을 때 어떤 신화를 시험에서 말할 것인가?
대다수가 아마 ‘단군 신화’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솔직히 우리나라 신화에 대한 내용은 단군 신화 말고는 거의 없다시피 하지 않은가? 물론 내 지식이 얕아서 모르는 걸 수도 있다.
아무튼, 우리는 반에서 너도나도 ‘단군 신화’의 내용을 영작하고, 서로 문법이 어떤지 봐주고, 단어를 알려주며 연습을 했다.
그리고 똑같은 주제로 모든 반이 다 시험을 봤으니 아마 그 시험을 본 사람이 300명은 우습게 넘었을 것이다.
그 당시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300명이 넘는 사람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원어민 선생님의 심정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게 수행평가 시간이 찾아왔고, 내 이름이 불려 복도로 나가서 원어민 선생님과 마주 보고 앉았다. 그리고는 수행평가를 시작했다.
말하기 시험을 할 때 시작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소개부터 시작해서 내가 이제부터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말하려 했다. 그렇게 자기소개를 했고 다음으로 단군 신화에 대한 언급을 하는 순간 선생님이 뱉으신 한 마디를 나는 기억한다.
“Oh my god...”
진짜 실화다.
솔직히 그 말을 듣고 너무 웃겨서 준비한 내용을 다 까먹었다. 그렇게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 나가는지도 모르는 채 뱉는 대로 말해서 시험을 마쳤고, 들어와서 친구들이랑 선생님이 하신 발언을 공유하며 웃었던 것 같다.
10년 전 원어민 선생님께서 느낀 감정을 정확히 ‘매너리즘’이라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얼마나 매너리즘에 빠졌으면 학생이 말을 시작하자마자 단말마 같은 한 마디를 내뱉었는지, 그 말씀을 하시고 본인도 당황하셨을지, 이런 상상을 하면 아직도 입가가 올라간다. 그 선생님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단군 신화에 대해서 기억하시지 않을까?
어쨌든, 매너리즘은 이렇게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고, 하면 안 되는 말을 하게 만들고, 정말 극도의 매너리즘에 빠지면 미쳐버리게 된다. 온 사방이 흰색으로 이루어진 방에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 이런 말도 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
아마 당신도 알고 있지 않을까? 원효대사가 해골에 썩어 있는 물을 마시고 남긴 말이다.
그렇다면 매너리즘도 마음먹기에 따라 극복이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항상 9시에 출근을 한다던가, 학생들은 정해진 시간에 학교를 가야 한다던가, 단순 작업을 반복하는 노동을 한다던가, 뭐 이런 것들 말이다.
이런 것들은 언급했듯 사방이 백색인 방 안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하지만,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진 방에 들어가도 흰색이 아닌 존재가 딱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나’이다.
아무리 차디찬 백색으로만 이루어진 방이라도 누군가 그곳에 들어가게 되면 그 방은 더 이상 아무 색도 없는 방이 아니게 된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 색, 피부색, 머리카락이나 입술 색 등 한 사람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 방을 다채로운 색감으로 채울 수 있다.
마치 아무것도 칠해지지 않은 도화지에 물감을 뿌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물감은 아마 당신, 정확히는 당신의 마음이다.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본인에게 집중한다면 극복해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에게 집중해 어떤 일이 있어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024. 10.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