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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이치료사 윤쌤 3시간전

마지막 외출 : 응급실

   2024년 1월 7일 일요일, 폐암 4기 엄마가 항암을 중단한지 5일째 되는 날이었어요. 돌아보면 주말이라 가족들이 모두 함께 있을 수 있어서 그저 다행이었어요. 


   엄마의 컨디션은 시간이 갈수록 눈에 띄게 나빠졌어요. 왼쪽으로만 돌아누운 자세는 바꾸실 줄 몰랐고, 그로 인해 왼쪽 엉치뼈 부근은 이미 살갗이 많이 헤진 상태(이것이 욕창이라는 것도 몰랐을 정도로 무지했네요)였죠. 식사라고 하기에는 정말 적은 양의 미음 한 숟갈, 딸기 과즙 한 숟갈만을 드셨어요. 


   의료인이 아닌 제가 보기에도 엄마의 얼굴과 눈에 황달이 급격히 진행되고 있었어요. 엄마는 폐암 4기 환자였지만, 원발 폐암보다도 전이된 간 부위의 암이 다스려지지 않았고, 결국 간 수치 때문에 항암을 중단했거든요.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이신 동네병원 원장님은 



   "간은 몸의 나무와도 같은 장기이기 때문에 간이 나빠지기 시작하면, 나무의 가지와 뿌리처럼 간과 연결되어 있는 다른 장기들이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질 거다" 


   라고 하셨었죠. 슬프고 야속했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어요. 


   토요일부터 엄마는 견딜 수 없는 통증을 호소했어요. 그저 손을 잡아드리고 통증이 멈추기를 기도하는 방법 밖에는 없어 괴로웠어요. 엄마는 타이레놀을 챙겨 먹으며 지내셨지만, 지켜보는 가족들도 그 정도의 진통제로는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생각되었고, 그래서 일요일 오후 5시, 엄마를 모시고 집 근처 병원의 응급실로 향했어요. 


   아빠는 응급실 담당 의사에게 엄마의 병환과 치료 상황을 설명했고, 내일 서울 A 병원에 입원할 예정이지만, 너무 기력이 없으니 수액이라도 놓아달라고 요청했어요. 하지만 응급실 담당 의사는 아무런 검사도 없이 수액을 놓을 수는 없다고 했어요. 기력이 없는 엄마에게 많은 검사를 하자고 할까봐 겁내고 있는 아빠의 뒷모습이 한없이 작아 보이고 깐깐하게 굴던 응급실 담당 의사도 미워보일 지경이었죠. 


   몇 분 뒤, 엄마에게 간단한 혈액검사 몇 가지를 하고 간단한 처치와 수액을 놓아주기로 했어요. 수액을 맞기 시작하면서 엄마가 조금 안정을 찾은 것을 보고 아빠도 가족들과 함께 응급실 밖에 있던 보호자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었어요. 며칠 전 검사 결과보다도 훨씬 더 높은 간수치가 나타나 가족들 모두 간담이 서늘했죠. 그 때 응급실 간호사가 로비로 나와 우리를 불렀어요. 



   "### 환자분, 따님! 

    환자분이 찾으세요!"


    응급실 간호사



   저를요?? 몇 번이나 다시 물어보며 어리둥절해서 응급실 간호사를 따라갔어요. 간호사도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따님을 찾으신다고 하더군요. 간호사를 따라 들어가니 응급실 한 베드 위에 누워 양쪽으로 주렁주렁 여러 개의 수액을 맞으며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엄마가 보였어요. 조심스레 다가가 엄마의 손을 잡고 말했어요. 



   "엄마 나 불렀어?" 

   "응... 네가 아빠랑 동생이랑~ 다들 밥 챙기라고~ 저녁때 됐잖아~" 


   희미하게 들릴 듯 말 듯 한 얇은 목소리로, 가쁜 숨을 내쉬며 엄마가 말했어요. 이 와중에... 우리 밥이 걱정이었구나. 그래서 말할 힘도 없는 엄마가 응급실 간호사를 불러 딸을 불러달라고 했구나. 엄마에게 알겠다고, 엄마 수액 다 맞으면 집에 가서 맛있는 거 먹을 거라고 했어요. 걱정 말고, 편하게 주사 다 맞고 집에 같이 가자고... 엄마에게 인사하고 돌아서서 걸어 나오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속절없이 나빠지던 엄마의 상태가, 잡을 수 없는 이 시간과 함께 멈춰지기를... 그래서 엄마가 우리 곁에 더 오래 있기를... 마음으로 바라고 또 바랬어요. 엄마의 마지막 응급실에 온 가족이 함께였다는 것이 그나마 정말 다행이었어요. 엄마의 당부대로 집에 와서 가족들은 저녁을 챙겨 먹었어요. 사실 뭘 먹어도 맛이 없고, 배가 고프지도 않았지만, 엄마의 당부대로 저녁을 먹었죠. 


   그리고 가족 긴급회의를 소집했어요. 



   "아빠, 며칠 같이 있어보니, 

    내일 서울 A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을 한다면... 

    전처럼 아빠가 혼자 집에서 엄마를      

    케어할 수 없을 것 같아..." 



   돌려서 말했지만, 사실은 엄마가 더 이상 집에서 지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였고, 병원에 모시자는 뜻이기도 했어요. 온 가족이 함께 한 주말이 지나고 나면, 아빠와 엄마 두 분이 남아서 감당할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거든요. 



   "그래, 생각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엄마가 집에 있고 싶어 할 것 같아.  

    나도 엄마랑 최대한 같이 있고 싶다. 

    그렇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알아봐 줘. "


   엄마가 폐암 4기 항암 중단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언젠가 이런 의논을 해야 한다는 걸 어렴풋이 상상해 봤지만, 이렇게 5일 만에 현실로 들이닥칠 줄은 생각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만큼... 엄마 진행 속도는 빨랐어요. 폐암이 원래가 그렇다고는 하네요. 


   긴급 가족회의를 마치고 남동생 내외는 월요일 출근을 해야 해서 일단 집으로 돌아갔고, 저와 남편은 월요일 엄마의 입원을 도와드리기로 해서 엄마 집에 남았어요. 이제 더 이상 항암을 하지 않을 거라면, 서울 A 병원에서 전원을 하라고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엄마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호스피스 병원과 요양병원 등을 남편과 검색하고 있었어요. 이왕이면 친절하고, 깨끗하고, 자연 풍경도 예쁘면 좋겠다며... 


   티비에서는 남편과 딸아이, 제가 제일 좋아하던 "태계일주 3"가 방영되고 있었고, 이날은 기안84 가 마다가스카르 현지 장례식 "파마디하나"에 참석한 내용이 방송되었어요. "파마디하나"는 죽은 자의 귀환이라는 뜻으로, 유족들이 무덤에 모여 7년에 한번 죽은 시체를 꺼내 새 수의로 갈아입혀 주는 전통 장례 풍습이었어요. 사랑하는 가족을 기억하고 추억하고 다시 이별하는 시간이었죠. 


   하얀 천에 쌓여있는 시체를 한 구씩 꺼내어 유족들에게 건네주는데요. 전혀 두려움이나 이질감 없이 꼭 껴안고 볼을 부비는 유족들의 모습이 내내 눈에 담겼어요. 유족들 옆으로는 흥겹게 춤을 추며 축제 같은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가득했죠. 

   이제 다시 헤어질 시간, 새 천으로 감싼 시체를  다시 한 구씩 무덤으로 옮깁니다. 잠깐이지만 원 없이 만지고 안아보고 이야기했던 유족들은 다시 이별을 해요. 7년 뒤에 새 천으로 갈아줄 때 만나기로 기약하면서요. 

   엄마와 함께 한 마지막 일요일 저녁, "태계일주 3"을 보며 눈물이 줄줄줄 흘러내렸어요. 혹시나 엄마에게 들릴까 싶어 끅끅거리며 울었어요. 초반에 내용을 눈치챈 남편이 다른 걸 보자고 했지만, 제가 끝까지 보고 싶다고 했죠. 어쩌면 그 때 이미 알고 있었나봐요. 이렇게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요. 

   두렵기도 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그래도 내일 병원에 입원하면, 조금 다른 상황이 생기지 않을까, 퇴원하라고 하면 어디로 가야 하나, 집에서 더 지내고 싶어 하시면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걱정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2024년 1월 7일,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일요일 저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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