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딸아이는 유치원을 졸업했어요. 꼬꼬마 딸아이가 학사모를 쓰고 졸업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 세 식구는 여행을 떠났습니다.
여행 내내 딸아이도 우리도 웃음이 가득했어요. 수영도 많이 했고, 좋아하는 테마파크에서 놀이 기구도 실컷 탔거든요. 할머니가 보내주신 용돈으로 달콤한 간식도 많이 먹었어요.
그때만 해도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지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날 아침, 아빠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딸, 잠깐 통화할 수 있냐?
식구들 다 같이 들으면 좋겠다."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긴장감이 흘렀어요.
"엄마가 많이 아프다."
응? 뭐라고?
엊그제 여행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고 통화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 얘기 없으셨는데... 갑자기 무슨 이야기인지 도통 현실감이 없었어요.
평소처럼 외출을 했던 엄마가,
도저히 걸을 수가 없다며 고통을 호소했고,
아빠와 급하게 동네 병원으로 달려가 간단한 검사를 해봤답니다.
동네 병원에서는 간단한 검사만으로도 알아볼 만큼,
엄마의 상태는 위중하고 긴급하다며,
그 자리에서 서울 큰 병원의 예약을 잡아주었다고 했어요.
우리 세 식구가 여행을 떠난 사이 일어난 일들이었죠. 엄마는 아빠에게 세 식구가 모처럼 여행을 떠났으니, 다녀오면 연락해 주자고 당부를 했답니다.
"그 와중에 여행이 뭐 중요하다고... "
저는 엄마 마음도 몰라주며 투덜거렸어요.
제발 아무 일이 아니기를, 기우이기를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었지요.
주말에 찾아가 보니, 엄마는 줄곧 침대에 누워만 계셨어요.
딸아이와 일주일을 보내셨던 엄마가 맞나 싶을 정도였지요. 한결 약해진 체력을 보고 돌아오는 길, 어쩌면 엄마에게 정말 큰 병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몇 주 뒤, 엄마는 서울 A 병원에서 첫 진료를 보았고,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다시 진료를 보기로 했어요. 공교롭게도 딸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 날이었죠.
엄마는 딸아이의 입학식에 와보고 싶었다며 너무도 아쉬워하셨어요. 저는 병원 가서 잘 치료하고, 나중에 많이 데리러 오시면 된다고 했지요.
남편도 회사 일이 바빠 딸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에는 저 혼자 참석했어요. 딸아이는 유치원을 함께 다닌 친구와 손을 잡고 씩씩하게 교실로 향했어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던 시절이라,
교문 앞에서 헤어지고 온라인으로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던 입학식이었어요.
딸아이와 교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온 오후,
별일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연락을 기다렸어요.
엄마는 암이었어요.
정말이지 '눈앞이 캄캄하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겠더군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고, 그저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몇 시간 전, 딸아이와 찍었던 입학식 사진 속 우리 모습이 더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정신이 들며, 딸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엄마와 둘이 딸아이를 보살필 생각에 학교 돌봄교실도 신청하지 않았던 저는 정말 말 그대로 멘붕이었어요.
엄마가 아프시다는 것도 충격이 컸지만,
돌봄의 공백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에 대해 갈피를 잡을 수 없었어요.
엄마는 늘 그 자리에 있을 줄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던 거죠. 엄마 없이 돌봄을 다시 설계해야 했던 그 봄, 저는 다시 "처음 엄마"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저보다 아이가 더 많이 놀랐을지도 몰라요. 절반의 엄마였던 할머니가 돌봄의 장면에서 사라졌으니까요.
그 겨울, 우리 셋이 찍은 졸업여행 사진은 눈부시게 화려했고, 아프도록 따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