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시어머니에게 딸아이 육아를 맡기던 첫날이 되었어요.
남편은 오래전부터 저와 시어머니가 서로 성향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신혼 초부터 시어머니와의 모든 의사소통은 남편이 전담해 왔습니다.
첫날 딸아이를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도 남편을 통해 전해졌어요. 마치 인수인계를 하듯 딸아이의 하교 시간, 학원 일정, 간식 위치까지도 빠짐없이 전달했습니다.
집을 정리하고 출근하는 길,
친정엄마의 부재가 더 크게 마음에 와닿았어요.
집이 좀 지저분하더라도, 정리를 못했더라도, 친정엄마가 올 때는 부끄럽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시어머니가 오신다고 생각하니, 눈에 밟히는 것들이 얼마나 많던지요. 현관문을 나서려다 가방을 내려두고 몇 번이고 다시 치우고, 다시 정리했어요.
바빠서 그랬겠거니, 하며 너그럽게 넘겨주시던 엄마는 이제 곁에 없고 이제 정말, 엄마 없이 딸아이를 키워야 하는 날이 시작되었으니까요.
제가 시어머니께 딸아이를 맡기며 기대한 것은 딸아이를 잘 봐주는 것, 단 하나뿐이었어요.
그렇게 내켜하지 않았음에도 시어머니께 아이를 맡기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지요.
그래도 친할머니니까, 남보다는 딸아이에게 더 따뜻한 손길을 건네주시리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셨어요.
딸아이와 집에 계시는 동안 베란다 창틀을 닦고, 현관을 쓸고,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을 잔뜩 해두셨지요.
"그런 것들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딸아이와 함께 잘 있어 주세요."
친정 엄마와도 이런 부분은 조율이 필요했으니, 처음에는 이해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시어머니는 딸아이는 이제 다 커서 혼자서도 잘 있다면서, 계획했던 일이 끝나시면 방에 들어가 친구분들과 기나긴 전화 통화를 하셨어요.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도 시어머니의 전화 통화는 끝나지 않았고, TV를 보다 지친 딸아이는 저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어요.
"엄마, 친할머니는 맨날 방에서 전화만 해!
혼자 있는 것보다 더 무섭고 심심해!"
잔뜩 화가 난 딸아이의 목소리...
잠시도 딸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곁에 앉아있던 친정엄마와 달리,
딸아이를 자주 혼자 두는 시어머니가 딸아이도 어색했겠지요.
그 마음을 몰랐던 건 아니에요.
어쩌면, 제가 더 잘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저 딸아이가 시어머니와 잘 지내주기만을 바랐습니다.
혹시라도 이 돌봄마저 할 수 없게 되면,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만 해도 정신이 아득했거든요.
남에게 아이를 맡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제 안에 꽤나 강력하게 자리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한동안은 참고 견디기로 했습니다.
남편은 늘 "어머니가 좀 남다른 면이 있다."라는 말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눈빛은 이미 지쳐있었어요.
결국 저와 시어머니가 마주치지 않도록 자신의 출퇴근 시간까지 조정했지요.
그 역시 엄마와 아내 사이에서 누구의 편을 완벽히 들 수는 없었겠지요.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듯, 남편의 낯빛은 흙빛이 되어갔지만, 저도 쌓여가는 제 감정이 버거워 애써 외면하고 말았죠.
외할머니와 있던 딸아이는,
같이 TV 도 보고, 간식도 먹고, 씻고, 학습지도하고 있었는데요.
친할머니와 있는 딸아이는,
혼자 TV를 보고, 과자만 먹고, 학교에 다녀온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가방도 그대로였어요.
급기야 어느 날 딸아이는 저에게 물었어요.
"엄마가 그냥 일 그만두면 안 돼?"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죠.
딸아이에게 엄마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그 말은 딸아이의 마음에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의 마음이 닿지 않는 돌봄은
아이를 더 외롭게 했고,
저는 그 외로움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습니다.
부모도 처음이라 서툴지만,
우리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마음을 잇다 : 마잇 윤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