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우리는 오래도록 울었습니다.

by 마잇 윤쌤

아침마다, 저녁마다 딸아이는 달력을 들여다봤어요. 시어머니가 오는 날이 다가오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죠.



"아, 할머니 오는 날이야? 싫다."



그 모습을 보는 제 마음도 함께 찌푸려졌어요.

출근 일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무거워졌고, 자연스레 남편의 눈치를 보게 됐어요.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때로는 그 말 없는 얼굴이 어떤 말보다 더 힘겹게 느껴졌습니다.


시어머니가 육아에 참여하고 2주쯤 되었을 무렵이었어요. 평소처럼 출근해서 일하고 있던 중에, 딸아이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 시간엔 딸아이가 레슨을 받고 있어야 할 텐데, 무슨 일이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수화기 너머 원장님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습니다.



"아이가 피아노 치기 싫다면서 많이 울었어요. 그래서 오늘 피아노 레슨은 안 하기로 했는데, 지금 피아노 치는 다른 친구 옆에 같이 앉아 있어요.


다른 친구들 수업에도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오늘은 귀가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순간 말문이 막혔어요.


딸아이는 피아노를 정말 좋아했거든요. 친정집에 가면 하루 종일 피아노를 치며 좋아하던 아이였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서둘러 퇴근해 집으로 향하는 길,

그제야 여러 장면들이 하나 둘 떠올랐어요.


그러고 보니 딸아이 하교 후 놀이터에 가겠다고 떼를 썼어요. 옷도 갈아입고, 과제도 미리 해두라고 했지만, 밤에 엄마랑 하겠다며 미루고 고집을 부리곤 했죠.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떼쓴다고 넘겼는데...



'아... 딸아이가 지금 힘들구나... '



딸아이의 마음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미안함을 품은 채 서둘러 집 근처 놀이터로 향했어요.

딸아이는 집이 아닌 놀이터에서 제가 잘 알지 못하는 낯선 아이와 놀고 있었어요.


그 옆에서 시어머니는 흐뭇한 얼굴로 딸아이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애 잘 놀고 있는데, 왜 왔어?"



차가운 말도 아니었는데,

그 말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어요. 묻는 말이었는데도 왜 그렇게 마음에 찔리던지...


그 질문에는 대답할 수도 없었어요.

솔직히 대답하고 싶지 않았어요.


시어머니를 배웅해 드리고, 딸아이와 마주 앉았습니다.


딸아이도 무언가를 감지한 듯,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었죠.



"할머니 보고 싶지?

그런데 이제 할머니는 올 수가 없어."



이야기를 하는 저의 목소리는 떨렸고,

딸아이의 눈동자도 흔들렸어요.

딸아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한 얼굴이었죠.



"응..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

그냥 예전처럼 할머니가 오면 좋겠어.

친할머니는 아무것도 몰라... 전화만 하고...

근데 할머니 이제 못 오잖아."



그 말이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저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어요.

엄마가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거라는 걸 아이도 알고 있었으니까요.



"엄마도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

그런데 우리가 잘 못 지내면,

할머니가 더 속상할 거야.

그러니까... 우리 조금 더 힘내보자."



딸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저에게 안겼고,

저는 딸아이를 꼭 끌어안았어요.


그날 저녁,

우리 두 모녀는 부둥켜안고 오래도록 울었어요.


말로 담을 수 없는 마음,

설명할 수 없는 그리움과 슬픔이

그 눈물 속에 함께 흘러내렸어요.








부모도 처음이라 서툴지만,

우리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마음을 잇다 : 마잇 윤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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