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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이치료사 윤쌤 Aug 07. 2024

엄마의 첫 응급실, 첫 입원

   비급여 항암제를 맞는 1년여의 기간 동안 엄마는 폐암 4기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치료의 경과가 좋았는데요. 그럼에도 온 가족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이 있었어요. 


   2022년 8월 초, 엄마가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3,4개월 정도 흐른 뒤였어요. 엄마는 1차 항암치료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에 큰 효과를 보지 못했고, 한 차례 약을 바꾼 시점이었어요. 1회에 400만원이 넘는 비급여 항암제를 처음 투약하고 엄마에게 약효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이었죠. 


    8월 초 제 생일날 엄마가 생일 축하한다고 전화를 해줬어요. 그런데 그 날 따라 엄마 목소리가 너무 힘이 없었어요. 


   "엄마 왜 이렇게 목소리에 힘이 없어?"

   "그러게 어제부터.. 너무 힘이 드네.." 


   사람의 촉이라는 게 과학적으로 설명할수는 없겠지만.. 느낌이 쎄한 게 뭔가 이상했어요. 저는 엄마에게 이것저것 질문했고,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출혈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어요. 저는 엄마가 맞는 항암제를 서울 A 병원 홈페이지에서 검색해서 일어날 수 있는 항암부작용에 대해 미리 숙지해두었거든요. 다시 생각해도 암환자 가족으로서 잘 한 일이기도 했지만.. 그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엄마에게 그러지 말고 병원 담당 간호사나 응급실에 전화해보시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고, 병원에서는 당장 응급실로 오라고 했죠. 당시 엄마의 혈소판 수치는 2000 (정상수치 15만~40만)이었어요. 응급실 의료진의 얘기로는 이대로 집에 계셨으면 돌아가셨을 거라 하더라고요. 


   응급실을 통해 엄마는 폐암 4기 항암 치료가 아닌 열과 출혈 치료를 위해 병동에 입원했기 때문에 병동 주치의가 달랐어요. 주치의와 병동 주치의가 의견이 다르기도 했고요. 주치의는 '항암 치료에 의한 부작용이다' 라고 소견을 냈지만 병동 주치의는 그래도 검사를 해서 다른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봐야 한다고 강조했고, 그래서 3주 동안 엄마는 정말 몸이 탈탈 털리듯 검사를 했어요. 다른 이상이 없어야 이게 항암 치료에 의한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는 거죠. 


   병원 입원을 하면 매일 아침 소변검사와 혈액검사를 해요. 매일매일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결과에 따라 추후검사를 하거나 약이 추가되죠. 엄마는 며칠째 염증수치가 떨어지지 않았고 열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검사와 치료가 계속 되었어요. 그러다 혈액암 의심소견이 있어 골수검사와 유전자검사도 진행했고요. 


   엄마가 입원 중이던 어느 날 여전히 너무 낮았던 혈소판 수치 때문에 수혈을 받기로 했어요. 아빠와 엄마가 곧 수혈을 받는다는 통화를 하고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그로부터 꼬박 하루, 24시간 넘게 연락이 되지 않았어요. 


   저는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서울 A 병원으로 찾아가 몇 시간을 하염없이 연락을 기다리며 로비에 앉아있다 오기도 했죠. 병원 로비에 앉아있으니 병원에 가실 때 마다 왜 그리 정신이 없고 힘들다고 하셨는지 알겠더군요. 얼마나 사람이 많고, 병원은 얼마나 넓고 복잡한 지... 참 무심한 딸이구나 자책하며, 기다렸지만, 엄마 아빠와 연락이 닿지는 않았고, 딸아이 하교시간이 되어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어요. 


   집으로 돌아온 오후 아빠와 어렵게 통화가 됐어요. 아빠에게 상황을 들어보니 전날 오후, 엄마는 혈소판 수혈을 받다가 갑작스레 혈소판 쇼크가 왔고, 혼수상태가 되기 직전이었다고 해요. 여러 의료진들이 다급하게 뛰어와서 엄마의 이름을 부르고 응급조치를 했고, 건장한 남자 의료진들이 빈 베드를 밀고 와 엄마의 병실 앞 복도에 서있었다고 했어요. 


   아빠가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엄마의 이름을 이야기하며, "환자분 얼굴 확인하러 왔어요" 했다네요. 나중에 알았지만, 혈소판 쇼크로 혼수상태가 지속되면 중환자실에서 모셔가려고 대기중이었던 거 였어요. 다행히 엄마가 금방 안정을 찾았지만 그 이후로는 침대에서 움직이지 말라는 지침이 있어 엄마 아빠 두 분이 더 고생하셨어요. 혈소판 쇼크 이후로 더 자주 의료진들이 다녀갔고, 검사도 받아야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꼬박 하루 넘게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하시더군요. 


   그 하루는 저와 가족들에게는 1년 같이 길었고, 엄마가 의식이 혼미해지는 것을 지켜본 아빠는 이후에도 엄마에게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느냐고 여러 번 물어보셨어요. 아빠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고.. 시시각각 변하는 엄마의 상태를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미처 따라가지 못했던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네요. 


   엄마의 첫 응급실과 첫 입원은 우리에게 엄마의 상태가 이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어요. 다행히 엄마는 3주 뒤에 퇴원하셨고, 아빠와 만세를 부르며 집으로 오셨죠. 주말, 딸아이와 엄마와 볼을 맞대고 셀카를 찍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해요. 믿을 수 없이 기뻤거든요. 엄마와 이렇게 집에서 일상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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